세기의 결혼식은 대중의 이목과 관심을 사로잡은 혼례의식을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성일과 엄앵란 두 영화계 대스타의 결혼식이, 외국에서는 영국 왕실의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스펜서 양의 결혼식이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렸다.
민언련 간사 시절의 최민희는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방송 카메라 앞에다 대고서 시끄럽게 남을 원망하지 않았다. 혼자 조용히 김치를 담그며 분을 삭였다. 사진은 최민희 의원이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세기의 결혼식 반열에 신랑 신부 모두 일반인인 결혼식 하나가 뜬금없이 추가될 기세다. 얼마 전 국회 사랑재에서 올린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녀의 결혼식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가치평가부터 먼저 하자. 집권 여당에 몸을 담은 국회 상임위원장이 하필이면 국정감사 기간에 자녀의 혼례식을 다른 곳도 아닌 여의도 국회 안에서 진행한 일은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모바일 청첩장에는 카드 결제 기능까지 알뜰하게 추가돼 있었다고 한다.
모바일 청첩장은 전통적 종이 청첩장을 대신해 최근에 대세로 자리 잡은 터다. 이쯤 되면 굳이 직권남용이나 이해충돌 같은 어려운 법률적 용어를 동원하기에 앞서서 혼주인 최민희 의원, 즉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오이밭에서 단순히 신발끈을 고쳐 맨 정도가 아니라 아예 얼굴 가득히 오이마사지를 한 격이라 하겠다. 최 의원은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즉시 현재 맡은 국회 상임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성명문을 너무 늦기 전에 발표하기 바란다. 그게 본인의 명예도 지키거니와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에도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최소한의 기본적인 수습책일 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 소행이 괘씸하다고 한들 최민희를 악의 화신으로 몰아붙이는 작금의 흐름은 지나친 감이 없잖다. 날달걀을 맞아야 어울릴 대상에게 초강력 벙커버스터를 투하하는 모양새인 탓이다.
최민희가 언론개혁 운동에 헌신하던 시절의 순수성을, 현실 제도정치권에 발을 들여놓던 시기의 초심을 잃은 건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나는 최민희가 탁해졌을지언정 모질고 각박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근거가 뭐냐고?
최민의 의원의 딸 결혼식에 축의금을 낸 사람들 가운데 유달리 눈길을 잡아끄는 인물은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였다. 그는 50만 원의 축의금을 냈다가 돌려받았다고 밝혔다. 최 의원과 이 대표가 같은 상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감안해도 조금 많은 느낌의 액수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개혁신당 열성 지지자들을 동시에 불쾌하게 만들 수 있는 얘기를 필자가 잠깐 해보겠다. 최민희 의원은 이준석 대표에게 때로는 은근하게 친절했고, 때로는 공공연하게 우호적이었다. 이 대표가 특유의 장점인 현란한 언변을 과시할 수 있는 마당을 최 의원은 상임위원장 권한을 십분 활용해 자주 마련해줬다. 최 의원이 남자였다면 감히 브로맨스로 표현해도 무방할 훈훈한 분위기가 두 사람 간에 빈번히 싹텄다.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의 이른바 젓가락 발언으로 말미암아 현 정부 고위층에게 이준석이 미운털이 단단히 제대로 박힌 점을 고려하면 최민희의 노골적인 친이준석 행보는 범상치 않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결단이었다.
본래의 최민희는 꼼수를 부리지 않는 직선적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적을 탄압하면 탄압했지 음해하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최민희는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에 밈처럼 돌고 있는 ‘이준석 사살령’을 전국에 내렸으면 내렸지 치사하게 ‘이준석 독살령’을 몰래 발동시킬 성격은 아니다. 이 대표는 최 의원과 상임위 활동을 함께하며 최민희의 특성과 개성을 영리하게 간파했을 수 있다.
이준석의 정치생명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으려고 광분하는 정치인들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가득한 상황이다. 최민희는 그들과는 판이하게 이준석을 해치려는 마음이 전연 없었던 셈이다. 인간은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똑같이 잘해주려고 노력하는 법이다. 이준석의 축의금 50만 원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의 결과물이었다. 아름다운 미담으로 칭찬하기는 설령 곤란할지언정 추악한 거래의 물증으로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번 결혼식 파동은 최민희의 정치생명을 사실상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는 장관이 되어 입각하는 일도, 경기도지사를 노리는 일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차기 총선에서의 공천 또한 물 건너갔다고 봐야 옳다. 작년 5월 30일 개원한 22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최민희는 조용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만 할 운명이다.
월간 말지 기자 겸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간사가 되었을 때까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최민희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올해로 정확히 만으로 40년째가 된다. 화려하게 기념했어야 마땅할 40주년이 오욕과 추문으로 얼룩진 40주년이 되었으니 지금 최민희의 속은 그야말로 시커멓게 탔을 게 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겼다. 최민희는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노무현 정신을 언급했다. 노무현 정신의 본질에 비춰본다면 그는 현재 너무나 많은 사람을 원망하고 있는 기색이다. 그 원망이 최민희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혹은 그의 선의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까지 오히려 냉담자로 돌려세우고 있다.
최민희는 정치를 하면서 이래저래 많이 닳았다. 여기저기 때가 묻었다. 허나 목욕물은 버릴지라도 아기까지 버리지는 말라고 했다. 최민희가 언론개혁에 오랫동안 이바지한 공로까지 도매금으로 폄하해서는 부당한 까닭이다.
나는 최민희에게 영광스러운 퇴진의 길을 열어줄 것을 호소하련다. 국회의원으로서 남은 2년 6개월의 임기 동안 최민희가 언론개혁의 전도사로서 다시금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자는 의미다.
민심이 그러한 소중한 기회를 만약 허락한다면 최민희는 정치인으로서의 여명을 특정 정당과 특정 당파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느라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네이버로 대표되는 거대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의 갑질과 횡포를 근절하는 데 힘써야 한다. 정치평론을 빙자하며 좌우 양극단에 포진해 코인 빨기에 여념이 없는 유튜버 장사치들의 준동으로 인해 초토화되고 황폐화한 정상적인 공론의 장을 복원하는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 이게 최민희가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임은 물론이다.
왕년의 최민희는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남을 탓하지 않았다. 김치를 담가 주변에 돌렸다. 최민희식의 자아 성찰이었다. 화가 나면 방송 카메라에 대고서 거친 언사를 쏟아붓는 오늘날의 최민희가 아닌, 손수 김치를 담가 주변에 돌리는 옛날 옛적의 최민희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여전히 적잖다.
그들의 그리움에 화답하며 최민희 의원이 최민희다워졌으면 좋겠다. 최민희는 다시 김치를 담그면 가장 먼저 이준석에게 축의금에 대한 답례 표시로 50포기를 보냈으면 한다. 윤석열이 찜 져먹고 김어준이 말아먹은 협치와 통합의 정신을 반드시 되살리겠다는 강력한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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