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사회의 이방인인 탈북자, 그리고 이성애 사회의 이방인인 성소수자…이것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이 사회가 나를 받아들이기 이전에,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밀려왔다. 목숨을 걸고 휴전선을 넘을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었다.('붉은 넥타이' 17~18쪽)
'붉은 넥타이'는 한 사람에게 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는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취하는 논픽션적인 접근과는 확실한 선을 긋고 있다. 체제와 이념과는 무관한 순수문학적인 시각과 감수성으로, 동성애자이자 탈북자인 작가의 슬픔과 웃음과 해학과 반전의 가슴먹먹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와 동명인 주인공의 출생부터 유소년시절, 동성 친구와 담임선생에게로 마음이 기울던 학창시절, 상관들의 ‘총애’를 받던 군복무시절, 결혼에 부적합한 인물임을 자각한 신혼시절, 탈북해 마침내 남한에 정착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고민하는 과정이 모두 담겨 있다.
저자인 장영진은 1959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평범한 노동자로 살다가 수학교사인 여성과 결혼했지만 곧 여성과의 공동생활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철창없는 감옥'같은 결혼에서 벗어나기 위해 1996년 두만강을 넘어 중국으로 갔다. 하지만 1년 1개월여를 한국행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다시 북한으로 들어간 그는 곧장 도보로 남하해 1997년에 동부 휴전선을 넘는데 성공한다. 남한에 와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인한 뒤 직장에 다니며 책을 읽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이방인이자 동성애자로서의 새 삶을 꾸려간다. 하지만 불행은 다시 이어졌다. 영혼의 짝인 줄 알았던 이에게 전재산을 날리게 된 것이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서 청소일을 하며 틈틈이 문학에 대한 열정을 되살려 소설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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