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제5호 성북거점형 우리동네키움센터, AI 기반 아동 정서지원 사업 추진
서울시 제5호 성북거점형 우리동네키움센터(센터장 최명숙)는 지난 3월 16일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KAVA), 더멤버스와 함께 아동·청소년의 건강한 성장과 안전한 돌봄 환경 조성을 위해 AI 기반 아동 정서지원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약은 지역 아동을 대상으로 정서 상태를 보다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맞춤형 정서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자 마련됐다. 세 기관은 상호 협력을 통해 아동·청소년 보호와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AI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정서지원 모델을 지역사회에 도입할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흑백요리사’ 이후 외식 소비 트렌드 분석
신한카드(사장 박창훈)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흥행이 방송 전후 실제 외식 소비 지형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분석한 결과, 미식 탐구가 하나의 여가 활동이자 ‘경험’을 소비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19일 밝혔다.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SNS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5년 미슐랭과 파인 다이닝에 대한 언급량은 흑백요리사 방영 전인 2023년 대비 각각 43.2%, 11.4% 증가하며 미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연관어 비중도 과거 ‘기념일’ 중심에서 최근에는 ‘셰프’, ‘
최근 10년 가장 많이 팔린 시집 1위는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최근 시집이 다시 출판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2024년부터 이어진 ‘텍스트 힙’ 트렌드와 함께 2026년 문화 트렌드로 떠오른 ‘포엣코어(시인의 감성에서 출발한 패션·라이프스타일)’ 등의 영향으로 시집이 젊은 세대의 관심 속에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문화콘텐츠 플랫폼 예스24는 오는 3월 21일 ‘세계 시의 날’을 맞아 최근 10년간 시집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집 시장의 주요 트렌드를 살펴봤다. ◇ 최근 10년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한 시집은?…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2016년부터 2026년까지 최근 10년
파비우스 막스무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상. 근육질의 건장한 체구와는 거리가 먼 범생이 백면서생의 인상이다. 그러나 저 유약해 보이는 백면서생이 이끄는 로마군이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대를 박살냈다. (사진출처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파비우스(BC 275년~BC 203년)는 헤라클레스의 후손이었다. 테베레 강가에 놀러온 헤라클레스가 요정과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의 아들이 가문의 시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요정이 아니라 인간의 여인과 눈이 맞아 정을 통했다고도 하지만 어차피 허구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므로 필자는 통 크게 그냥 요정이라고 인정해주고 싶다.
파비우스 가문에서 그가 등장하기 이전에 제일 유명했던 인물은 룰루스였다. 이 책의 주인공인 파비우스 막시무스는 바로 이 룰루스의 4대손이다.
파비우스가 헤라클레스의 후예도, 요정의 자손도 아님은 그의 어린 시절 별명만으로 단번에 확인된다. 그는 ‘새끼 양’으로 불렸다. 성격이 나이답지 않게 온순하고 신중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몹시 순종적이어서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남을 이끌기보다는 바보같이 남의 이끌림을 받는 것을 더 좋아했다.
낭중지추라고, 헤라클레스 같이 담대하지도, 요정처럼 낭만적이지도 않았음에도 나이를 먹어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을 무렵이 되자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는 무기력한 게 아니었다. 쓸데없는 격정에 휘둘리지 않을 뿐이었다. 소극적인 것도 아니었다. 단지 신중했을 따름이었다. 순발력이 떨어진다는 체질상의 약점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부족한 순발력을 지구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상쇄시킨 덕분이다.
로마는 정치와 전쟁이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굴러가는 전형적인 정복국가였다. 따라서 신체의 단련과 두뇌의 훈련이 병진되어야 출세의 기회가 찾아왔다.
파비우스는 적을 무찌르는 자연산 무기인 몸을 부지런히 다듬음과 아울러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최종 병기인 입심을 쉬지 않고 키워나갔다. 그는 본인의 삶의 방식에 어울리는 연설 기법을 개발했다. 과장된 수식어나 허풍 섞인 군더더기 말들을 모두 빼고 담백하고 품격 있는 웅변술을 지향해나갔다.
파비우스는 통틀어 다섯 차례에 걸쳐 집정관 자리에 올랐다. 그가 첫 번째로 집정관으로 선출되어 남긴 치적은 리구리아 족을 대파한 사건이었다. 파비우스에게 크게 혼쭐이 난 리구리아인들은 알프스의 산속으로 도망간 다음 다시는 이탈리아 본토를 얼씬거리지 않았다.
한니발이 로마에 몰고 온 공포와 충격에 견주면 리구리아 사람들의 약탈과 습격은 귀찮은 민폐 수준에 불과했다. 트레비아 강 유역에서 치러진 전투에서의 승리에 한껏 기세가 오른 한니발의 군대는 에트루리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여러 가지 불길한 징조들이 로마인들을 몸서리치게 했는데, 그중 압권은 팔레리이 지방의 하늘로부터 석판이 떨어진 일이었다. 석판에는 이와 같은 소름 끼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제 마르스신께서 무기를 휘두르실 것이다.”
한니발이 군신 마르스가 지상에 현현한 존재라는 기분 나쁜 뜻이었다.
파비우스는 결국은 자연의 우연한 산물에 지나지 않을 흉조들에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로마인들 사이에 만연한 공포심과 불안감이 문제의 본질임을 잘 알았다. 한니발만 물리치면 민심의 동요는 곧 진정될 터였다.
파비우스는 한니발이 당장은 기세등등해도 모자란 병력과 열악한 보급사정으로 말미암아 상승세가 머잖아 꺾일 것임을 예상하고는 적과의 즉각적 교전을 피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는 싸움에 나서는 대신에 로마의 동맹국들과 위성국들이 한니발 진영에 가담하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는 데 주력했다.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paxnews.co.kr/news/view.php?idx=28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