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의뢰인이 침묵하면 변호사는 제대로 변론을 못해
공희준(이하 공) :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임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망국적 대중영합주의(Populism)에 몰두해왔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화천대유 주주들을 비롯한 대장동 특혜 개발 사건의 주요 연루자들의 소행이 무척이나 괘씸하고 부도덕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검찰이 김만배 씨 형사사건 변론을 수임한 법무법인 태평양을 대장동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등에 업고서 압수수색한 일도 본질은 파퓰리즘이 아닐까요? 검찰이 법률에 근거해 움직이기보다는 시중 여론에 편승해 행동에 나선 모습이니까요.
김관기(이하 김) : 검찰이 엄밀한 법리가 아닌 분노한 대중의 힘에 의지해 공공의 적들을 일망타진하겠다고 나섰다면 한마디로 무리수입니다.
공 : 흉악범들을 재판하는 사건을 보면 변론을 담당한 국선 변호인들까지 네티즌들에게 덩달아 흉악범 취급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것처럼 대장동 일당은 헌법에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가치조차 없다고 검찰이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김 : 검찰 측이 어떤 동기를 갖고서 태평양을 압수수색했는지를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아맞히기 어렵습니다. 변호사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는 의심과 추측이 있었어도 이제까지 여간해서는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지 않아왔습니다. 가능하면 변호사 사무실을 뒤지지 않는 게 검찰 실무의 암묵적 가이드라인이었습니다.
공 : 검찰 실무에서도요?
김 : 예. 제가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 하려면 검사장의 결재도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변호사를 구속할 경우는 최종 결재권자가 검찰총장 선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지금부터 꽤 오래전의 이야기이기는 합니다.
공 : 현직 변호사를 사법처리하는 데 검찰도 상당한 부담감을 느꼈다는 말씀이네요?
김 : 변호사의 구속은 사법시스템 전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초래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당연히 신중할 수밖에 없지요. 변호사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태가 잦아진 건 우리나라 사법체계의 권위와 신뢰도가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공 : 변호사가 구속되고 대형 법무법인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게 당장은 통쾌하고 속 시원한 일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기 마련입니다. 왜냐면 태평양처럼 유수의 로펌도 손쉽게 압수수색을 당하는 마당에 작은 법률사무소들을 어떻게 믿고서 사건을 맡기겠습니까? 변호사를 만나 상의한 내용이 언제 검사들 손에 들어갈지 모르는 불안한 형편에서요.
김 : 그게 바로 검찰 압수수색이 낳을 맹점이고 부작용입니다. 고객이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변론을 받으려면 변호사에게 사건과 관련된 자초지종을 모두 낱낱이 털어놔야만 합니다. 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검찰에 언제라도 털릴 수 있는 분위기에서는 고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해 검찰에 새나간 은밀한 사항들이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는 증거로 채택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이 선택적으로 사건에 관계된 정보를 알려줄 경우 변호사들은 손발이 묶인 상태로 검찰과 맞서야 하는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공 : 검찰이 의뢰인의 비밀을 쉽사리 알아채는 여건과 환경에서는 변호사들이 영업도, 변론도 하기 힘들게 되겠네요?
김 : 예, 그렇습니다.
공 : 제가 오늘 변호사님을 찾아뵙기 전에 잠깐 검색해보니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위법하고 불법적으로 수집한 증거들은 법정에서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개념이었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무차별적으로 압수수색해 취득한 정보와 자료들도 독과독수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김 : 그러자면 검찰의 변호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기율하는 명확한 절차상의 규제가 존재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게 없습니다.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려면 검찰총장이나 대법원장이, 아니면 대한변협 회장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과정이 면밀하게 확립돼 있지를 못합니다. 검찰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얻어낸 내용이 검사들이 피의자를 기소하고 구속하는 근거로 고스란히 사용될 위험성이 다분한 구조입니다.
변호사에 대해서는 같은 변호사들이 가장 잘 알아
공 : 변호사님께서는 검찰이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사례가 종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태평양 압수수색은 어째서 일파만파로 파문이 확산된 건가요?
김 : 검찰이 압수한 물품 가운데에는 태평양에 소속된 변호사의 휴대전화기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의뢰인과 문자나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나눴을 대화 내용을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활용해 밝혀내겠다는 목적과 의도가 작동했겠죠. 그런데 지금은 휴대전화만 확보하면 그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입니다.
공 : 디지털 빅 브라더(Big Brother)에 대한 우려와 공포가 그래서 자꾸만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 : 변론을 담당한 변호사의 휴대전호까지 가져가는 바람에 변호사 사회에서는 검찰이 무리하게 증거 수집에 나섰다는 반응이 비등해지고 말았습니다.
공 : 앞으로는 변호사들도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처럼 휴대전화를 두세 개 들고 다녀야겠네요?
김 : 보통 사람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몸조심할 필요가 있나요? 다들 착하게 사는데. (웃음)
공 : 착하게 사니까. 흐흐흐
김 : (조금 냉소적 어조로) 열심히 변론하다가 괜히 공범으로 도매금으로 엮일 수도 있으니 적당히 변론하고, 또 적당히 의뢰인에게 조력해야죠.
공 : 변호사들로 하여금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도록 검찰이 대형 법무법인을 압수수색하는 형식으로 서초동을 무대로 일종의 공포정치를 시작했네요.
김 :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들릴 듯 말 듯 이를테면 “미국이나 한번 가지” 같이 은근슬쩍 지나가는 말투로 얘기하면 범인도피를 교사하는 행동이 됩니다. 명백한 실정법 위반 행위입니다.
공 : 결과적으로 도주를 권유한 셈이겠네요.
김 :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몰지각한 비양심적 변호인은 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는 없습니다. 그런데 잠시 가정해봅시다. 피의자가 단지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의뢰받은 변호사의 휴대전화를 검찰이 압수수색해 디지털 포렌식에 넘기면 이는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넓고 촘촘하게 그물망을 치는 결과가 됩니다.
공 : 붕어 한 마리 잡겠다고 소양호 전체에 그물을 던진 모양새네요. 그야말로 일망타진입니다.
김 : 휴대전화가 압수당한 변호사가 이후 어떤 심정에 휩싸이겠습니까?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권력이 본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중무휴로 24시간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리기 마련입니다.
공 : 누군가 나를 항상 들여다보고 있다는 기분, 악몽 중에서도 끔찍한 악몽입니다.
김 : 국가는 개인에게 최소한의 숨 쉴 틈과 공간을 보장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갑자기 반대로 바뀌고 있어요. 국가의 감시망이 개인이 더는 견뎌내지 못할 지경으로 빡빡해지고 있습니다.
공 : 법률에 대해 완전 문외한인 저조차 법원 조직과 검찰 집단과 변호사 사회를 ‘법조 3륜’으로 지칭해왔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삼권분립 체제와 유사한 구조입니다. 검찰의 권능이 과도하게 비대해지면 법조 3륜의 삼권분립 시스템이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을까요? 변호사가 검사들 앞에서 이렇게 힘을 쓰지 못하니 균형이 무너져도 치명적으로 완벽히 무너진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김 : 원인은 국가권력이 지나치게 강해진 데 있습니다.
공 : 판사와 검사는 공무원인데, 변호사만 민간인이네요.
김 : 법조 3륜이라는 표현은 예전부터 빛 좋은 개살구가 됐습니다. 균형과 조화의 원리가 공허한 구두선이 돼버린 지 오래입니다. 법원은 조직이 팽창하면서 권력이 놀랍게 강화됐습니다. 검찰이야 두말할 나위조차 없고요.
공 : 그러고 보니 당장 현직 대통령부터가 검사네요. 여권의 2인자로 통하는 법무장관도 검사 출신이고. 변호사들만 맥이 빠진 것 같습니다.
김 : 길거리에 차이는 게 변호사가 됐습니다.
공 : 제가 서초동으로 오면서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동아일보 기사를 잠깐 읽었는데 그럼에도 변협회장 선거는 되레 더 치열해졌습니다. 변호사들은 나날이 힘이 없어지는데….
김 : 개인으로서의 변호사가 힘이 없으니 그와 반비례해 변호사 조직의 역할과 중요성이 더더욱 증대되고 있습니다.
공 : 동아일보는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선거가 이전투구의 진흙탕 싸움이 되며 변호사들끼리 서로 고소고발을 하고 있다고 혀를 끌끌 차고 있었습니다.
김 : 저도 변호사지만 솔직히 변호사들 간의 고소고발은 지나쳤다고 봅니다.
공 : 변호사 비용이 들지 않으니 고소고발이 더 쉬웠겠네요. 저처럼 법조계의 자세한 내막과 속사정을 파악하기 힘든 일반인들 시각에서는 몹시 씁쓸한 노릇입니다. 변호사들 내부의 문제로 검찰청을 찾아간 거잖아요. 조선 말기 고종과 명성황후 일파가 농학농민혁명 진압해 달라고 청나라에 원병 요청했던 부끄러운 역사를 떠오르게 합니다. 제3자의 개입을 자청했으니까요.
김 : (착잡한 표정으로) 선거전략상 고소고발을 했을 수야 있겠지요.
이 대목에서 김관기 변호사는 이번 인터뷰 중 유일하게 말끝을 흐렸다.
공 : 저도 이른바 논객끼리의 고소고발 사건을 몇 번 목격했는데, 당사자가 아닌 저까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김 : 조직의 주도권을 둘러싼 다툼이 격렬해졌다는 건 변호사 개인 차원에서는 지속적으로 무력감을 절감한 탓일 수 있습니다. 단결하지 않으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확보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위기감의 발로입니다.
공 : 개인전으로는 승산이 낮으니 단체전에서 승부를 걸겠다는 고육지책으로 여겨집니다. 노동자들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개별 노동자들의 위상과 입지가 불안해진 후과로 민주노총 같은 거대 노조 기반의 조직들이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습니다.
김 : 변호사 사회도 한국사회 다른 분야들이 겪고 있는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로를 밟고 있습니다.
공 : 검찰이 변호사 사무실을 부당하게 침탈했다는 인식이 변호사 사회에서 널리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면 변호사들이 단체로 검찰청 앞에서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들 사무실에서 검찰청까지 거리도 가까울 텐데. 현재는 자신이 압수수색 당하지 않았다는 데 안도하며 강 건거 불구경하는 양상입니다.
김 : 검찰이 아직은 전면적이고 대규모적으로 변호사들을 탄압하고 있지 않습니다.
공 : 변호사들이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올 혁명적 정세가 무르익은 건 아니네요.
김 : 양 한 마리가 잡아먹혔다고 해서 양떼 전체가 일제히 들고 일어나 늑대를 물리치지는 않습니다.
공 : 양이야 힘도 없고 지능도 낮지만, 변호사들은 여전히 엘리트에 역량도 만만찮습니다. 변호사들이 늑대에게 무력하게 포획당하는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되는 건 자포자기적 대응으로 생각됩니다.
김 :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 사건을 본인과는 무관한 타인의 일로 간주하는 경향과 심리가 저변에 흐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태평양쯤 되는 대형 법무법인에 칼날을 겨눴다면 검찰도 나름의 고민과 계산이 있었겠지요. 판사 또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발부해주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했을 거고요. 검찰도, 법원도 각자의 셈법이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저는 보다 수월하게 납득되고 수긍될 방식과 형태로 압수수색을 집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절차가 중간에 생략됐다는 느낌을 여전히 지울 수가 없어요.
공 : 국회에서 관련 제도를 만들지 못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있을까요?
김 : 압수수색 현장에 변호사 협회의 입회는 마땅히 있었어야 합니다. 어떤 변호사가 좋은 변호사이고 어떤 변호사가 나쁜 변호사인지는 동료 변호사들이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법입니다. 변호사 사회에서는 분명 일정한 정도의 자정작용이 그 기능을 수행해왔습니다. 변호사 협회의 입회가 어렵다면 압수수색 현장에 변호사 한 명쯤은 꼭 참관자 자격으로 머물렀어야 합니다. 혹은 압수수색영장 발부 여부를 판사만이 결정하게끔 하지 말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배심원단 같은 곳에서 판단하도록 이끄는 방법도 있습니다. (③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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