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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희①, “아나운서의 전성기는 지났다” - 나이 먹으면 관두라는 수군댐이 아나운서들을 좌절시켜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3-04-20 18: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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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이 돈이 되고 권력이 되는 시대다. 대중의 관심을 유치하려는 노력이 성공하면 이른바 셀럽 즉 유명인이 되고, 실패하면 그야말로 관종이 되고 마는 분위기이다. 아나운서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양면의 칼이다. 잘 받으면 영웅이 되지만, 잘못 받으면 역적이 된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관심을 끌고자 분투하는 시대에 아나운서들은 과연 어떤 꿈과 희망을 갖고 일과 삶이라는 두 가지 전선에서 양면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박지희 아나운서를 만나 한국의 아나운서들의 생각과 생활에 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2023년 4월 19일 수요일 저녁, 서울 마포의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위치한 YTN 뉴스 사옥 안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사진 촬영과 편집은 김한주 사진전문기자가 맡아주었다.

공희준(이하 공) : 아나운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선망받는 직종입니다. 반면 전통적 형태의 언론은 대표적 사양산업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아나운서분들은 자신을 언론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망하는데, 아나운서 직업은 아직 건재한 역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아나운서의 최전성기는 2005년에서 2010년 사이


박지희 아나운서는 직업으로서의 아나운서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음을 솔직담백하게 토로했다. (사진 : 김한주 사진전문기자)

박지희(이하 박) : 아나운서는 이제는 건재를 장담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단지, 건재한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나운서 직업이 가장 각광받던 전성기는 지금은 현대가의 며느리로 변신한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 같은 인물들이 한창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할 때였습니다.

 

공 : 벌써 15~16년 전 얘기네요.

 

박 : 예, 그렇습니다. 그 후로는 줄곧 하향세를 타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했겠지만, 유튜브로 상징되는 1인 미디어가 활성화된 게 아나운서 직업의 퇴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적 형태의 방송을 대신하는 매체들이 여럿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대략 2005년부터 2010년에 이르는 기간은 아나운서가 최고로 촉망받는 인기 직업으로 군림하는 시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과연 이 직업을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불안감은 아나운서들 사이에 폭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아나운서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상당수 사람들이 아나운서를 나이 들면 관두는 직업으로 여긴 탓이었습니다. 젊고 예쁜 후배들이 들어오면 기존 아나운서들은 자발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짙게 형성돼 있었습니다.

 

공 : 용퇴의 압박이 엄청 강했네요.

 

박 : 아나운서들을 향해 나이 먹었으니 집에 가라는 소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풍토였습니다. 이를테면 연차가 쌓인 의사들에게 이제 감각이 떨어졌을 테니 환자 진료에서 그만 손을 떼라는 말들을 함부로 하지는 않습니다. 아나운서 사회는 다릅니다. 결혼했다고 그만두라고 하고, 출산했다고 그만두라고 하고, 나이 들었다고 그만두라고 합니다. 대중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직업이란 게 퇴직을 종용하는 이유입니다. 시청자들에게 늙어가는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식입니다.

 

공 : 아나운서도 사람인데 불로초를 먹지 않은 바에야 어떻게 늙지 않을 수가 있나요?

 

박 : 듣는 아나운서들 입장에서는 몹시 기분 나쁜 얘기들이었습니다. 정말 속상하고 황당하죠. 저는 아나운서가 수많은 직업들 중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직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론계로 시야를 좁히면 아나운서는 블루 워커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공 : 관리자라기보다는 현장 노동자 성격에 가깝네요.

 

박 : 제가 경험한 바로는 아나운서 직종은 오랫동안 자리를 차고 앉아서 기득권을 누릴 수 있는 직업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저는 아나운서 자체가 어쩌면 머잖아 아예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울한 감정에 가끔 빠지곤 합니다. 저는 아나운서들이 본인의 장점과 전문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새로운 진로를 개척해야 한다고 봅니다.

 

공 : 어떤 활로를 모색할 수 있을까요?

 

박 : 예를 들자면 콘텐츠 창작자는 아나운서들이 고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강력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입니다. 종래에 아나운서들이 점유했던 공간이 지금은 연예인 같은 다른 직종 종사자들에 의해 적잖이 잠식된 상황입니다. 아나운서들이 자신의 역할과 무대를 유지해가려면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여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뉴스 진행이 여전히 아나운서들의 영역으로 남아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뉴스는 실제로는 기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앵커들의 대다수가 기자 출신입니다.

 

아나운서를 뉴스 진행의 틀 안에만 가둬선 안 돼


박지희 아나운서는 아나운서들에게 활동방향의 다변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사진 : 김한주 기자)

공 : 아나운서로 시작해 예능인으로 변신ㆍ전업하는 사례가 대세가 됐습니다. 박지희 아나운서님께서도 「채널지희」란 이름으로 개설된 유튜브 방송에서 예능 콘텐츠를 내보내고 계십니다. 아나운서들의 전반적 예능화와 연성화는 대중과의 접촉면을 넓혀주는 바람직한 외연 확장인가요? 아니면 뉴스 프로그램 진행만으로는 현실적 생존이 어려운 까닭에 선택한 불가피한 고육지책인가요?

 

박 : 현실에서는 아나운서라고 하여 무조건 뉴스 프로그램을 맡기지는 않습니다. 방송에 출연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잡으려면 시청자들이 나를 찾게 만들어야 하고, 시청자들이 나를 찾게 만들려면 결국은 나만의 뚜렷하고 확실한 매력을 개발해 꾸준히 발산해야 합니다. 아나운서들이 다양한 방면으로의 진출을 시도하는 건 그래야 내 밥줄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으려면 예전처럼 뉴스 진행 한 가지에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아나운서=뉴스 진행자’로 바라보는 일은 매우 단편적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나운서 스스로가 아나운서라는 틀에 갇히면 활동반경이 매우 제약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나운서로 호칭되기보다는 방송인으로 불리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아나운서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자기 자신만의 독보적 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부동산 같은 실물 경제에 특화된 방송인으로 거듭나려 공부하는 분도 계시고, 패션과 관련된 방송일로 일가를 이루길 꿈꾸는 분도 계십니다. 이제는 방송계에서도 확실한 전문 분야 없이는 생존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공 : 아나운서님께 방금 매력이라는 단어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기자에게 실력을 요구해도 매력까지를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박 : 저는 신문기자이건 방송기자이건 기자도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본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신념을 기사로 말하는 사람입니다. 기사에 자신의 모습을 담는 셈입니다. 자기의 모습을 어딘가에 싣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매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좋은 기사를 내려면 탄탄한 실력이 당연히 기본적으로 뒷받침돼야겠지만요.

 

공 : 제가 방송에 관해선 완전 문외한이라 호기심 차원에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기자들은 뭔가를 기획해 취재한 내용을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서 보도합니다. 아나운서분들도 뉴스의 탐사보도나 혹은 교양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에서 기획 작업에 관여하시는지요?

 

박 : 그건 특정한 범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방송마다 또는 프로그램마다 다릅니다. 모든 기획 작업이 사전에 이미 완료된 상태에서 아나운서가 합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나운서가 프로그램 제작 초기 단계에서부터 PD와 작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같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은 프로그램의 성격과 색깔이 전부 정해진 다음 그에 적합한 진행자로 발탁ㆍ섭외되곤 합니다. (②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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