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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정의의 편에」 편집 후기 - 마땅히 있어야 할 곳과 응당 머물 자리를 알았던 어느 사나이의 일대기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5-01-25 22:3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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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옥 변호사의 육성 회고록인 「영원히 정의의 편에」는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과, 응당 머물러야만 할 자리와, 떠날 때를 정확히 알았던 한 사나이의 삶의 일대기가 생생하고 오롯하게 담겨 있다.“엄청 머리 아프게 할 사람인데.”

 

한국 인권변호사 1세대의 주역이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인으로 유명한 강신옥(1936~2021) 변호사가 생전에 현역 정치인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절, 그가 만약 어느 정치 컨설턴트에게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연락해왔다면 해당 컨설턴트는 아마 혼잣말로 위와 같은 푸념을 했을지 모른다.

 

왜냐? 정치 컨설턴트들이 첫 번째로 꺼리는 고객이 컨설팅 비용을 제때 결제해주지 않는 파렴치한 정치인이라면, 두 번째로 달갑지 않은 의뢰인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자 당 지도부와 사사건건 충돌해온 길들이지 않은 야생마 같은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인권변호사에서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한 강신옥은 정당의 공천권과 당직 임명권과 자금 집행권 전반을 틀어준 이른바 제왕적 총재의 눈치를 전연 보지 않고 회의 때마다 하고 싶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인물이었다.

 

그러니 다음번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고, 유력한 중진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 요긴한 디딤돌이 되어줄 주요 당직도 맡지 못하며, 더욱이 늘 돈이 부족하기 마련인 야당에서 그나마 오랜 가뭄 끝에 살짝 내리다 그치는 야속한 가랑비처럼 띄엄띄엄 내려오는 중앙당의 자금 지원조차 제때제때 확보하지 못했을 강신옥을 그 어떤 정치 컨설턴트가 쌍수 들고서 환영할 수 있었겠는가?

 

강신옥이 공천에 집착하지 않은, 원내총무나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 등의 꽃보직에 애면글면하지 않은, 돈에 휘둘리는 정치를 하지 않은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유는 그와는 장인과 사위의 관계인 홍윤오 전 한국일보 기자가 최근에 완성해 세상에 내놓은 강신옥의 육성 회고록 제목에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영원히 정원의 편에」

 

「영원히 정의의 편에(도서출판 새빛 발행)」는 고 강신옥 변호사가 전개한 다양하고 치열했던 인권변론 활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상세하고 핍진하게 서술돼 있다.

 

강신옥이 부당한 보복성 인사조치에 항의하며 분연히 법복을 벗은 박정희 정권 초기부터 시작해, 그가 재일교포 심한식 씨 간첩 사건의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전두환 정권 말기에 이르기까지 의로운 인권변호사의 길은 고단한 반독재 민주화 투사의 길이기도 했다. 따라서 강신옥이 유신 치하에서 자행된 최악의 인권탄압 사건일 민청학련 사건 피의자들을 변호하다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과 법정모욕 혐의로 구속돼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은 일은 강신옥에게는 고통스러운 가시면류관이기 이전에 양심적 법조인이라면 당연히 짊어져야만 할 영광스러운 십자가였다.

 

정의가 실종된 사법살인의 시대는 동시에 정치가 실종된 공안통치의 시대이기도 하다. 군부독재 시절에 강신옥은 짓밟힌 정의의 회복에 힘썼다. 그는 1987년 6월 시민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하고 국회가 정치의 중심공간 역할을 되찾은 다음에는 정치의 복원과 정상화에 주력했다.

 

강신옥은 실력파 정통 법조인이다. 그는 고등고시 행정과에 사법과 양과에, 그것도 군에 복무 중인 현역 사병 신분으로 차례로 합격한 수재 중의 수재였다. 그가 권력에 부역하고 정권에 영합한 판사와 검사들을 법정에서 법리로써 완벽하게 제압했던 배경이다.

 

현실제도권 정치에 입문한 이후의 강신옥은 현재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흔하게 목격되는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과 달리 단순하고 기회주의적인 법률 기술자로 기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특별법의 남발에 반대했던 데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그는 법이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강신옥은 되레 국민이 법을 위해 봉사하는 물구나무를 선 입법 과잉 사태를 철저하게 경계했다. 정치권에서 야기된 문제를 정치인 스스로의 힘으로 지혜롭고 담대하게 풀지 못하고 걸핏하면 검찰과 법원으로 가져가 해결을 맡기(Outsourcing)는 오늘날의 무책임한 정치풍토를 생각하면 “정치의 극대화와 법의 최소화”에 노력한 강신옥의 판단과 행동은 더욱더 신선하고 청량하게 느껴진다. 강신옥의 사전에 ‘정치의 사법화’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강신옥 회고록 「영원히 정의의 편에」서 우리가 특히 주의 깊고 흥미롭게 읽어야 할 부분이 있다. 김대중(DJ)과 김영삼(YS) 두 정치 거목에 대한 강신옥의 패기에 찬 당돌한 도전과 그에 대한 양김의 성숙하고 포용력 있는 응전이다.

 

강신옥은 1980년의 ‘서울의 봄’ 당시에 김대중의 동교동 자택에서 DJ를 만난다. 그는 그 자리에서 DJ의 신민당 입당을 직설적으로 강하게 촉구했다.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의 권력 찬탈 야욕을 분쇄하려면 양김이 조건 없이 손잡아야만 한다는 게 강신옥의 정세분석이자 확고한 결론이었다.

 

DJ는 물론이고 동교동계 인사들에게 강신옥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만일 지금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누군가 더불어민주당 당내에서 요란하게 떠들어댄다면 어떻게 될까? 세칭 수박 세력으로 몰려 험악한 문자폭탄과 인터넷상의 각종 조리돌림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DJ와 동교동계 인사들 모두 강신옥의 뾰족한 주장을 면전에서 거칠게 반박하지도, 나중에 그를 조직적으로 왕따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든 강신옥의 마음을 돌리려 그를 부드럽게 달래고 설득했다.

 

강신옥의 거침없는 직설적 발언은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에 몸담은 동안에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강신옥은 김대중이 창당한 평화민주당과의 경쟁의식에 지나치게 매몰된 나머지 DJ의 평민당과 무조건 반대로만 하려고 드는 당의 기조와 노선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YS는 “강 의원, 통일민주당 위하는 게 나라를 위하는 거예요”라며 점잖게 강신옥을 타일렀다고 한다. 상도동계 정치인들은 수시로 YS에게 대드는 강신옥에게 웃는 얼굴로 항변했지, 얼굴을 붉히고 싸우려 들지 않았다.

 

대통령 윤석열이 12·3 친위쿠데타를 획책하기 전에 통일민주당에서와 비슷한 광경이 국민의힘 안에서 빚어졌다고 가정해보자. 강신옥은 내부총질을 일삼는 해당 행위자로 분류돼 백이면 백,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됐을 터이다. 강신옥의 당원권을 폭력적으로 정지시킨 윤석열과 친윤 정치인들은 내부총질 일삼는 골칫덩어리 인간이 사라지니 당이 평안해졌다면서 대놓고 기뻐했을 게 뻔하다.

 

강신옥은 소위 상남자였다. 그는 요즘 젊은 누리꾼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잠시 빌려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노빠꾸 스타일’이었다. 대신에 그는 투명하고 진실했다. 본인의 어이없는 실수와 부끄러운 치부들을 굳이 억지로 감추거나 무리하게 윤색하려 시도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가 다른 방에 수감된 나이 어린 대학생으로부터 핀잔을 들었던 일을, 3당 합당에 찬성한 연유로 후배 인권변호사들로부터 단체로 원성을 샀던 사연을, 폭탄주를 과음해 만취한 상태로 국정감사장에 돌아오는 바람에 톡톡히 망신을 당했던 사건을, 16대 대선 정국에서 박근혜와 정몽준 사이에 벌어진 샅바싸움에 희생돼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던 씁쓸한 기억을 가감 없이 회고록에 기록했다. 시종일관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자서전은 결단코 쓰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강신옥은 굳건히 지켰다.

 

나라가 어수선하다. 가히 총체적 난국이다. 베테랑 특수부 검사였던 대통령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탄핵소추를 당해 구치소에서 시쳇말로 며칠째 콩밥을 먹고 있다. 제일 강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제1야당의 지도자는 당내 반대파와 비주류를 끌어안지 못한 탓에 중도층 유권자로의 외연 확장에 거듭 실패하며 지지율이 심각히 정체돼 있다. 거대 양당을 극복하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한 신당들 가운데 하나는 대표가 영어의 몸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당권 다툼으로 말미암아 불난 집이 돼버렸다.

 

강신옥은 정의로운 법조인이 필요한 시대에는 정의로운 법조인으로 맹활약했다. 소신 있는 정치인이 요구되는 시기에는 소신파 정치인으로 동분서주했다. 그는 민심이 더는 자기를 찾지 않자 미련 없이 공적 무대에서 퇴장했다.

 

남자는 있어도 사나이는 없는, 법률 기술자는 허다해도 참다운 법률가는 없는, 노인들은 길거리에 차고 넘쳐도 청년세대가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원로는 없는 암울한 이때 강신옥의 부재와 공백이 새삼 아쉽고 안타까운 까닭이다. 그 허전한 심정을 그의 회고록을 찬찬히 훑어보며 채우기를 이 책의 탄생 과정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탠 한 명으로서 감히 부탁드리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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