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독수리 5형제
김건희는 신평 변호사의 입을 빌려 윤석열에게 최후까지 버틸 것을 독려했다. 이는 살아남으라는 격려였을까? 아니면, 장렬히 옥쇄하라는 요구였을까? 사진 왼쪽부터 직전 영부인 김건희 씨와 전직 윤석열 씨의 모습
정치 컨설턴트 명태균 씨는 전직 대통령 윤석열과 배우자 김건희의 관계를 앉은뱅이 주술사와 장님 무사의 관계에 의미심장하게 빗댔다. 김건희가 윤석열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에서 잠깐, 필자는 명태균 씨를 기성 언론에서 부르는 정치 브로커가 아닌 정치 컨설턴트로 호칭했다. 왜냐? 성공하면 컨설턴트이고, 실패하면 브로커인 곳이 총성 없는 전쟁터인 대한민국 정치판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 15년 동안 민주당 계열 정당을 무대로 태상왕 노릇을 해온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만약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서 ‘킹 메이커’ 구실에 실패하면 그는 정치 브로커 김어준‘으로 단박에 전락하고 말 게 뻔하다. 김어준 태상왕 체제에서 당연히 상왕은 친노진영의 수장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였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명태균 씨는 직접 현장에서 시쳇말로 칼을 휘두르는지의 관점에서 김건희와 윤석열의 역할분담 관계를 정의했다. 나는 다수의 대중에서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느냐의 견지에서 김건희와 윤석열 두 사람의 분업 관계를 규정하고 싶다.
「독수리 5형제」는 현재의 86 세대는 물론 이른바 진보대학생 세대, 즉 왕년의 X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을 추억의 텔레비전 만화 영화이다. 이 작품이 원래는 일본에서 제작된 SF 애니매이션 시리즈를 우리말로 번역해 한국 방송사에서 편성·방영한 프로그램이었음은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비밀 아닌 비밀이다.
「독수리 5형제」에 등장하는 양대 악당 캐리가 있다. 최종 보스인 총재 X와 행동대장 격인 알렉터, 다른 이름으로 갤랙터이다. 총재 X는 오직 알렉터에게만 모습을 드러낸다. 오로지 알렉터게만 지시하고 요구한다. 다른 존재들과는 여간해서는 소통하지도, 말을 섞지도 않는다.
반면, 알렉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출귀몰한다. 부하들에게 지령을 내려야지, 주적인 독수리 5형제와 수시로 신경전과 몸싸움을 벌여야지, 심지어 지구인들에게 이런저런 협박성 발언도 해야지, 참으로 바쁘기 짝이 없다.
그렇다. 윤석열과 김건희의 관계는 왕년의 인기 만화 영화 「독수리 5형제」 속의 총재 X와 알렉터의 관계와 대단히 흡사했다. 김건희는 자신의 전체적 의중을 오로지 윤석열에게 보여줬다. 나머지 사람들은 김건희의 진정한 의도를 파편적으로, 부분적으로 듣는 데 머물렀다. 이는 ’김건희 특검‘과 ’윤석열 내란 특검‘ 가운데 전자의 수사가 훨씬 더 어려운 이유로 작용하는 중이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차례로 구속되면서 둘 사이의 직접적 대화는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따라서 이제 김건희는 제3자의 입을 빌리거나, 혹은 자기의 발언이 뉴스에 보도되는 것과 같은 간접적 방식을 통해서만 윤석열에게 속내를 전달할 수 있는 형편이다. 더욱이 윤석열과 김건희 부보 모두 구치소에서 여느 수감자들과 매한가지로 일반 접견실만 사용하게 됨으로써 둘 간의 의사 교환은 좋게 표현하면 선문답 형태를, 정확하게 얘기하면 난수표 같은 은밀한 모양새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윤석열 한 명을 위한 김건희의 옥음 방송
신평 변호사의 김건희 접견 후기가 세간의 뜨거운 화제로 떠올랐다. 두 가지 연유에서이다.
첫째는 김건희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배신자라 비난하며 옥중에서 저격한 일이다. 김 씨 측 변호사들은 한동훈 비판 발언은 신 변호사가 없는 말을 꾸며면 것이라고 해명하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김건희 씨의 상습적인 식언과 습관성 거짓말을 고려하면 신평이 김건희가 애당초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임의로 지어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둘째는 남편인 윤석열을 염두에 두고 던졌을 서늘하고 섬뜩한 메시지이다. 신 변호사의 전언에 의하면 김씨는 접견실 의자에 대뜸 앉자마자 “선생님,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라며 말문을 떼었다고 한다.
김건희 접견 후기를 신 변호사의 페이스북에서 읽자마자 나는 갑자기 오한이 엄습하면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마치 으스스한 공포물을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혼자 혼자 보는 느낌이었다. 김건희는 말과 행동이 언제나 180도로 달랐다. 내조에만 충실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국정농단과 매관매직에만 충실했던 양두구육의 행태는 굳이 새삼스럽게 되풀이해 강조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그러니 “선생님,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는 “남편이 죽어버려야 저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로 해석해야 김건희의 본심을 제대로 읽는 효과적 독법이 될지도 모른다.
신 변호사는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서울 남부구치소에서의 접견이 마무리될 즈음 김건희가 “남편을 만나면 꼭 끝까지 버텨 달라고 전해 달라”고 각별히 당부했음을 소개했다. “나는 악착같이 살 테니 당신은 최후까지 결사항전을 하라”는 김건희의 대윤석열 메시지가 비로소 확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김건희가 윤석열과의 결혼을 결심한 동기를 둘러싸고 다양한 추측과 가설이 제기돼왔다. 검찰조직의 그늘에 숨으려는 도피성 결혼이었다는 의견도 있고, 김건희의 원대한 야망을 이루려는 정략결혼이었다는 풍문도 들린다. 김건희라고 하여 꼭 계산적으로만 영악하게 살라는 법은 없다. 김건희의 공식적인 주장처럼 홀로 늙어가는 배불뚝이 아저씨 윤석열이 진짜로 너무나 불쌍히 여겨진 까닭에 12살 연상의 띠동갑 노총각에게 마음을 열었을 수도 있다.
관건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대등한 인격의 만남으로 귀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북한의 사례에 대입하자면 수령과 인민의 수직적 종속관계처럼 되고 말았다. 윤석열이 김건희를 결사적으로 옹위하는 인간 총폭탄이 시나브로 돼버린 탓이다. 작년 12월 3일의 돌연한 비상계엄 선포를 빙자한 친위군사쿠데타는 김건희의 안위와 재산을 지키려던 윤석열의 거대한 자폭테러였다.
윤석열의 어이없는 자폭테러는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더해서 실제 총폭탄 역할을 담당해야만 하는 군부의 태업과 비협조로 실패했고, 그로 말미암아 윤석열과 김건희는 따로따로 감옥에 들어앉아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있다.
이 기약 없는 이별마저 윤석열을 김건희의 굴레와 마수로부터 해방하는 광복의 날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김건희가 특유의 중성적인 저음으로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윤석열에게는 아직도 변함없이 신성하고 거룩한 옥음(玉音)으로 들리는 까닭에서였다.
“선생님, 제가 죽어버려야 남편에게 살길이 열리지 않을까요?”는 김건희가 윤석열에게 내리는 장렬한 옥쇄(玉碎) 명령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태평양 전쟁 시기의 제국주의 일본은 압도적 전력과 물량의 미군에 맞서서 무모한 자살공격에 나서는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에게 낡은 고물 비행기 한 대씩이라도 지급해줬다.
반면, 김건희는 윤석열이 먼저 옥에 들어가 있는 동안 면회 한 차례 와준 적이 없었다. 옥에 갇힌 윤석열과 아크로비스타에 머물던 김건희 간의 심리적 거리는 안전한 궁성의 방공호에 대피해 있는 일왕 히로히토와 하늘을 가득 메우고서 작렬하는 자욱한 대공포탄의 화망을 뚫고서 미 해군 항공모함과 충돌하려 날아가는 제로센 전투기 안의 이름 없는 특공대원 사이의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아득히 멀었다.
김건희는 윤석열에게 꼭 끝까지 버티라는 옥음을 남겼다. 패전 직전의 일본군 대본영도 사이판 제도와 유황도와 오키나와의 병사들에게 반드시 마지막까지 항전하라고 독려했었다. 단지 “살아서” 버티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전 지구 차원의 기후위기가 가져온 폭염이 좀처럼 누그러질 기미가 없다. 더위에 시달리는 민중의 처지를 걱정하여 옥중에서 때늦은 납량특집물을 하사해주신 직전 영부인께 감사드리고 싶다. 김건희가 윤석열에게 내린 무시무시한 옥쇄 명령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오금이 시려오며 이빨까지 덜덜 떨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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