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몰락한 권력 옆엔 문고리 권력이 있었고, 이는 네로가 축출된 고대 로마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지는 윤석열 정권 패망의 원인을 제공한 김건희와 그 주변의 문고리 권력들의 행태를 보도한 MBC 문화방송 뉴스 화면
폭군 네로가 비참하게 죽으면서 로마는 훗날의 모택동이 주장했던 바처럼 권력이 총구에서 비롯되는 적나라한 실력 경쟁의 시대로 들어서는 듯했다. 당시는 화약이 발명되기 전이었으므로 총포의 역할을 창칼이 수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인민의 시선은 갈리아 지역에 머무르고 있던 베르기니우스 루푸스에게 일시에 쏠렸다. 그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한 병력을 휘하에 통솔하고 있었다.
베르기니우스는 그로부터 2천 년 후에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서 발생한 윤석열의 12·3 친위군사쿠데타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현대 한국 군부의 충암파와는 결을 달리하는 비교적 양심적인 군인이었다. 그는 의회격인 원로원을 무력으로 해산하는 데 나서기는커녕 원로원의 명령에 복종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다. 부하들 가운데 일부가 대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거병을 촉구했으나 이 점잖은 로마 장군은 그러한 요구를 부드럽게 물리쳤다. 군대의 지휘권을 자발적으로 반납한 베르기니우스는 또 다른 유력 대권 주자였던 갈바의 군영에 합류했다. 절체절명의 승부처에서 스스로 운전대를 돌리는 로마판 철수정치였다.
그즈음엔 어리석어 보였던 그의 결정이 베르기니우스에게 편안한 노후를 안겨줬다. 네로의 자살로 무주공산이 된 로마의 최고존엄 자리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권력투쟁에 부나비 같이 뛰어들었던 인물들의 상당수가 나중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탓이다.
갈바는 갈리아의 도시 나르보에서 원로원 대표단을 접견했다. 수도는 근위대장 님피디우스가 여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네로가 생전에 애지중지한 각종 집기와 보물들을 갈바에게 대량으로 보냈다. 새 황제를 향한 충성 표시였다.
갈바는 이 화려한 물건들을 처음에는 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비니우스가 갈바에게 황제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출 필요가 있다며 직전 황제의 유품들을 사용할 것을 종용했다. 갈바는 비니우스의 조언을 좇아 네로가 사용하던 호화로운 용품들을 쓰기 시작했다. 비니우스가 갈바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확실한 문고리 권력으로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비니우스는 여자와 재물을 밝히기로는 둘째가려면 서러운 작자였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직속 상관의 아내에게 군복을 입힌 다음 밤에 막사로 몰래 끌어들여 은밀히 정을 통하기까지 했다.
호색 행각은 물욕에 비하면 어쩌면 점잖은 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심지어 카이사르의 집에 초대받아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가 대담하게 은잔을 훔친 적도 있었다. 목이 열 개가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목숨을 건진 건 순전히 카이사르의 장난기가 발동한 덕분이었다. 카이사르는 식탁 위의 은잔이 없어진 사실을 깨닫고는 비니우스를 다시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식탁 위의 식기들로 값싼 질그릇만을 내놓았다.
카이사르의 한없이 관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니우스의 과도한 금전욕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탐욕스러운 인간이 새롭게 황제에 즉위할 사람의 문고리 권력으로 승승장구해 나라의 재정문제를 총괄하게 됐으니 그야말로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통째로 맡긴 형국이었다.
새 문고리 권력의 등장은 옛 문고리 권력의 몰락을 뜻했다. 님피디우스가 갈바의 동태를 염탐하려는 목적으로 파견한 겔리아누스는 우울한 소식만 갖고서 로마시로 귀환했다. 갈바와의 독대는 고사하고 황제의 얼굴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보고였다,
더욱더 불길한 사건은 코르넬리우스 라코가 신임 근위대장으로 임명된 일이었다. 비니우스와 라코가 황제의 양팔 노릇을 하게 되면 님피디우스에게는 한 가지 선택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님피디우스는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전군 주요 지휘관들을 소집해 갈바가 교활한 간신배들에게 둘러싸였다고 떠들었다. 그는 비슷한 취지로 시민들 앞에서 연설했으나 청중으로부터는 싸늘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로마인들은 새로운 황제를 순진한 어린애 취급하는 님피디우스가 시건방을 떨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쯤에서 멈췄다면 그는 권력은 잃었을지언정 소중한 생명만은 부지했으리라. 그러나 권력의 맛을 일단 한번 본 님피디우스의 사전에 포기란 없었다. 그는 국경을 수비하는 변방의 장수들이 모반을 획책하고 있다며 갈바를 상대로 공갈을 쳤다. 군부의 사정에 관해서라면 군문에서 잔뼈가 굵은 갈바가 훨씬 더 정통하기 마련이었다. 곧 사방에서 반란일 일어날 거라는 공갈이 먹혀들 수가 없었다.
갈수록 총기가 흐려지는 님피디우스 곁에도 사리분별력 뛰어나고 충성스러운 참모는 있었다. 안티오쿠스, 즉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이 고향인 클로디우스 켈수스는 님피디우스를 황제감으로 여기는 사람은 로마에 단 한 명도 없을 거라는 돌직구를 날리면서 주군에게 자중자애할 것을 진심으로 간절하게 당부했다.
님피디우스는 그의 진정한 본의가 뭐였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외환죄(外患罪)를 저질렀다. 그의 무책임하고 경망스러운 언동으로 말미암아 로마의 불안한 정정이 이웃 국가들에 더 빠른 속도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동방의 야심가인 폰토스 왕국의 미트리다테스 왕은 갈바를 늙은 쭈글탱이 대머리 노인네라고 공공연히 조롱하면서 로마의 국경선을 침범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렸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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