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WISET, 5주년 토크콘서트 ‘어쩌다 아름이’ 개최 - 2040 아름이 최대고민은 ‘취업’

이한국 기자

  • 기사등록 2017-05-22 14:17:39
기사수정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가 5월 20일 토요일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롯데 액셀러레이터에서 사연 많은 이공계 여자들의 만남 설립 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어쩌다 아름이>를 개최했다.


“[20대/취업] 중상위권 대학의 ‘취업깡패’라는 ‘전화기(전기전자/화학/기계)’ 학과 나왔어요. 취업이 잘된다는 건 남자들만의 얘기고, 기사 자격증 따고 영어 점수도 만들었지만 면접 한 번 가기도 힘들어요. 주위 여자 동기들은 벌써 다른 분야 취업, 대학원 진학, 공무원 시험 준비로 길을 바꿨어요. 저보다 모자란 남자 동기들이 먼저 취업하는 걸 보면 속이 쓰려도, 이 분야에서 당당히 살아남고 싶어요.”

(취업준비생 김OO)


“[20대/연애] 자발적 ‘연애고자’에요. 제 직업에 만족하고 있고 회사에게 투자한 금액도 상당합니다. 퇴직할 경우 매몰비용이 큰 고급인력이죠. 그러다 보니 경력단절이 무서워서 연애단절을 시작했어요. 너무 오래 연애를 안 하니 슬슬 걱정이 됩니다.”

(드론 파일럿 이OO)


“[30대/유리천장] 결혼을 한 뒤 제가 진행하던 프로젝트에서 배제됐어요. 결과물은 꽤 좋은 학술지에 실렸죠. 동료들이 뒤에서 왜 아이 낳으러 들어가지 않느냐고 수군대는 데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정작 저는 실적을 뺏겨 이직하기도 어려운 데 말이에요.”

(포닥 이OO)


“[30대/경력단절] 공대 나와 남성 중심 기업 연구소에서 일했어요. 결혼해 연년생 아이 낳고 보니 어느새 하이에나처럼 구직 사이트를 어슬렁대는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됐더라고요. 저는 점점 작아져서 볼펜똥만큼 남았는데 학부밖에 나오지 않은 제가 무슨 일을 더 할 수 있을까요?”

(경력단절여성 김OO)


온라인을 통해 사전에 취합한 사연은 230여 개에 달했다. 학점, 연애, 취업, 결혼, 육아, 경력단절, 재취업, 창업 등 이공계 여자들이 삶에서 부닥치는 거의 모든 문제들이 한 데 모였다. 그 중 절반 이상이 취업, 나머지 절반 이상이 전공, 휴학, 경력단절, 이직 등 진로에 대한 광범위한 고민이었다. 230여 건의 고민 중에 연애에 대한 질문이 단 두 건 뿐이었다는 건, 각박한 이공계 여성들의 현실을 방증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압도적이어서 차마 연애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다.


20대부터 50대까지 각 세대를 대표하는 패널들은 세대와 처지를 뛰어넘어 함께 고민을 나눴다. ‘쎈 언니’로만 알려졌던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장은 “연애야말로 궁극의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것”이라며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남성들이 갖지 못하는 경력 한 가지를 더 갖추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철학에서 게임까지 수차례 길을 바꿨고 인생에서 단 한 번도 정규직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며 “전공과 일이 일대일 대응되지 않는 시대에 개개인의 고유함을 살려 새로운 길을 만들라. 절대로 미리 두려워하지 말라”고 밝혔다.


여 위원장은 “여자들이 한 데 모여 판을 바꾸고 ‘대왕몬’을 잡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이 무서워하는 캐릭터로 성장할 것”이라며 “다음번에는 아예 법과 정책을 내놓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공계 대학 페미니스트 연합을 만든 대학생 강미량(포스텍 화학과 4학년) 씨는 혼자서 대응하기 어려운 성차별, 성폭력에 대한 연대를 약속하며, “도망가지 않겠다”고 말해 또래들의 마음을 샀다. IT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박조은(엔비티 엔지니어) 씨는 “육아휴직을 둘러싸고 근로감독관을 통해 전 직장에 법적인 대응을 하는 과정에서 ‘게임업계에서 매장당할 것’이라는 걱정과 위협을 동시에 들었다”고 토로하면서 “그러나 프로그래머가 일할 수 있는 곳은 게임업계 말고도 많았다”고 용기를 주기도 했다.


1부와 2부 진행은 소셜벤처 <걸스로봇> 이진주 대표와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과정남)> 박대인·정한별 씨가 나눠 맡았다. 이 대표는 두 번의 경력단절을 겪고 난 뒤 비슷한 처지의 이공계 아름이들을 돕는 스타트업을 차린 경험을 들려줬다. 여성 모임의 ‘소수자’로 출연한 과정남 두 사람은, 과학기술계의 경계인이자 이공계 여성들의 조력자로서 보고 듣고 느낀 일들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축하공연을 맡은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 이자람 씨는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테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먹고 자고 싸고, 이 세 가지 사이클만 돌아가면 끝내 견딜 수 있다”며 따뜻한 위로를 전했다. 밴드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크레이지 배가본드> 등 7곡의 노래를 선물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모인 100여 명의 참석자들이 대부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전에서 올라온 20대 직장인 이경미 씨는 “나의 일상에서 생기는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좋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포항에서 참석한 20대 교직원 강지우 씨는 “공대 아름이들이 꾹꾹 참으며 혼자서 열심히 버텨왔구나 싶었다. 이 자리에 와서 그걸 나누고 싶다는 절심함이 느껴졌다. 여자들이 모이고 얘기하고 지지하는 모임들이 더 자주, 더 여러 곳에서 생겨나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총괄한 WISET 한화진 소장은 “여성은 이공계의 소수자로서 여러 어려움에 처하지만, 오히려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고 더 의미 있는 일들을 할 수 있다”며 “다음에는 여성 과학기술인을 위한 정책 해커톤 같은 자리에서 신나게 다시 만나자”고 밝혔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paxnews.co.kr/news/view.php?idx=690
  • 기사등록 2017-05-22 14:17:39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중동전쟁 대응 총력·전속고발제 개편 논의…이재명 대통령, 국무회의서 위기 대응 주문 중동전쟁 여파 속 민생 대응과 제도 개편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정부 방침이 제13차 국무회의에서 확인됐다.이재명 대통령은 31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중동전쟁 관련 비상국정운영 상황과 주요 정책 과제를 점검했다. 회의에서는 전속고발제 전면 개편 추진 방안을 비롯해 ‘국민 삶의 질 2025’, ‘모두의 지...
  2. 이진용 전 가평군수, 13년 만에 정치 복귀…무소속으로 군수 선거 출사표 13년의 공백을 깨고 이진용 전 가평군수가 무소속 예비후보로 등록하며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가평군수 탈환에 나섰다.이진용 전 가평군수는 지난 3월 27일 가평군선거관리위원회에 무소속 예비후보자 등록을 마쳤다. "이진용과 함께 다시 뛰는 가평"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그는 재임 당시 추진했던 에코피아 가평 구상을 고도화한 &#39;에...
  3.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장애인 대상 산림체험 프로그램 진행 서울시립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은 국립춘천숲체원에서 장애인 대상 산림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성인 장애인 18명이 참여했으며, 참가자들은 숲해설 프로그램과 ‘숲향기솔솔’ 아로마테라피 활동을 통해 자연을 오감으로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숲해설 프로그램에서는 숲의 생태와 계절 변화를 배우며...
  4.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67%…민주당 48% 2주 연속 ‘최고치’ 이재명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67%를 기록하며 높은 지지세를 이어갔다.한국갤럽이 2026년 4월 7일부터 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이재명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해 67%가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24%, 의견 유보는 10%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
  5. 중동전쟁 대응 ‘거시정책 공조체계’ 출범…정부, 첫 재정·금융 협의체 가동 정부가 중동전쟁 장기화에 대비해 재정·금융 등 거시정책 공조를 강화하는 협의체를 공식 출범시켰다.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첫 ‘거시재정금융간담회’를 주재하고 중동전쟁 대응을 위한 정책 공조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박홍근 장관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참석했다.이번 간담회는 ...
포커스 뉴스더보기
책-퇴진하라
책-보수의종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