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쪽은 주권재민의 헌법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퇴진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법부의 독립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장훈 중앙대학교 명예교수는 ‘법의 지배’가 ‘사법 엘리트’의 지배로 오랫동안 오도돼온 한국적 현실이 이러한 혼란과 갈등의 저변에 놓여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김대중도 산맥이고, 노무현도 산맥이었다
당이 대통령을 만들지 않고, 대통령이 당을 만들어온 대한민국 제도권 정치의 독특한 전통을 감안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우리당이 급조된 일은 바람직하지 아니하되 불가피했던 현상일 수도 있다. 이미지는 열린우리당 창당 대회 장면을 생중계했던 오마이뉴스의 썸네일
공희준(이하 공) : 제가 교수님과 약간의 논쟁적 티키타카를 잠깐 감히 시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대중 진영과 노무현 세력이 순리대로 무리 없이 분리됐다면 뒤탈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실상은 영 딴판이었습니다. 대북송금 특검 수사로 동교동계가 완전히 초토화된 상황에서 새천년민주당이 분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로 인해 특검 수용을 둘러싸고 기획설이나 음모론이 난무했습니다.
장훈(이하 장) : 특검이 사전에 기획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습니다.
공 : 「김대중 평전」의 저자이기도 한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새천년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을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전형적 관점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김 전 논설위원은 노무현이 김대중이라는 산맥의 우뚝한 봉우리로 만족하지 않고, 자기 역시 김대중에 버금가는 거대한 산맥으로 발돋움하려는 야망을 품었던 데서 이 모든 분란과 파행이 비롯되었다는 취지로 평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과욕을 부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장 : 저는 그러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노무현의 등장은 김대중과는 독립된 또 다른 커다란 산맥의 융기를 의미한 이유에서였습니다. ‘노무현 현상’은 새로운 한국, 즉 뉴 코리아(New Korea)의 대두를 뜻했습니다.
2002년 대통령 선거가 노무현 후보의 승리로 끝난 다음 저는 미국 아시아 소사이어티의 초청으로 미국 5대 도시에서 강연을 하는 강연 여행을 떠났습니다. 미국인들이 자기들 관점으로는 노무현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한국에서 학생들에게 정치학을 가르치는 저를 초청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양김 시대에 한국 정치를 규율하던 정치 문법을 이제는 깔끔히 잊어야 한다”고 강연 때마다 현지의 미국인들에게 되풀이해 강조했습니다. 저는 지역주의 구도 같은 종전의 낡고 익숙한 패러다임에 근거해 한국 정치를 바라보면 노무현은 불가사의한 인물로 미국인들에게 비칠 뿐이라는 점을 특히 힘주어 말했습니다.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일방주의적으로 정치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노무현의 출현과 함께 종언을 맞이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 : 노 대통령이 반미주의자란 소문이 미국 조야를 퍽 긴장시켰을 것 같습니다.
장 : 그와 관련된 내용도 미국에서 행했던 저의 순회 강연에 당연히 포함됐습니다. 저는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국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고 믿고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미국이 한국에서 수십 년간 누려온 영향력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이 노무현 현상을 중요하게 떠받치고 있다는 점을 저는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배경과 요소들을 확실하게 인식해야만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강연에 참석한 미국인들 앞에서 얘기했습니다. 그와 같은 내용이 제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 미국에서 했던 일련의 강연들의 요지였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홍희경(이하 홍) : 2002년 전해인 2001년에 미국에서 알카에다가 저지른 9·11 테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신자유주의 반대 시위가 한참 전개되던 때였습니다. 제가 그때 호프집에서 학우들과 모임을 하는 중에 비행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에 연달아 충돌하는 충격적 광경을 텔레비전 뉴스 속보로 봤던 일이 기억납니다.
장 : 세계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라 다들 놀라고 당혹스러워했습니다.
공 : 9·11 테러 사건이 터졌을 저는 강남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안성기와 정우성이 주연한 「무사」라는 영화가 막 개봉했는데 테러의 파장에 직격탄을 맞아 흥행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 관리하던 개봉관에서도 때마침 그 영화를 상영했었거든요. 미국이 주제가 되니 9·11 사건이 거의 자동으로 언급될 수밖에 없네요.
9·11 사건을 저는 먼 나라에 사는 시청자 입장으로 봤습니다. 반면에 민주당 분당 사태에서는 제가 비록 이름 없는 행동대원 수준이기는 해도 나름 선수로 뛰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노빠공장 공장장’을 자처하던 시절이라 물론 분당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이었습니다. 거의 돌격대 수준이었습니다. 1987년에는 정치와는 무관한 고등학생이었지만, 2002년부터 2004년에 이르는 시점에서는 원조 인터넷 훌리건으로 한창 까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제게는 민주당 분당이 양김의 단일화 실패와 견주어 압도적으로 중요했던 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당시 ‘난닝구 프레임’을 앞장서서 만들어낸 게 진중권 현 광운대학교 교수였습니다. 진중권을 위시해 민주당 분당을 열렬히 옹호하던 이들은 분당으로 쪼그라진 민주당을 ‘잔민당’이라고 부르며 모멸적으로 조롱했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에 남기로 선택한 인물들에게는 그러한 행위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잔인하고 야비한 짓으로 여겨졌을 테지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노무현 돌풍이 부는 시점부터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해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다시 복귀하는 때까지 사실상 투명인간 수준이었습니다. 김어준이 솔직히 한 일이 없어요. 그런 김어준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을 틈타서 친노 감별사로 변신해 민주당 계열 정당들을 무대로 지금까지 세도를 누리는 일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입니다. 저라도 이걸 언급하지 않으면 아무도 얘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 기회에 김어준의 영악한 사회생활 편력을 꼭 박제해두고 싶습니다.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석 44석의 초미니 여당으로 출발했습니다. 집권당이 50석도 안 되는 의석만 보유한 경우는 그 후로는 다시 없을 게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민주당이 깨지면서 250석의 원내 의석을 갖게 된 야권이 설마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장난을 하겠느냐고 생각하며 상황을 낙관했습니다. 그런데 여당과 야당이 치킨게임을 불사하며 폭주하고, 노 대통령의 생방송 기자회견 직후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와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손잡고 2004년 3월 12일에 노무현 대통령에 탄핵소추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켜버렸습니다. 교수님께서 일관되게 걱정하고 비판해오신 ‘정치의 전쟁화’가 이로써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노 대통령 탄핵 사건 전까지는 시끄럽고 곡절은 많았을지언정 정치인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정치판이 오로지 “돌격 앞으로!”만 외치는 살벌한 전쟁터로 변모했습니다. 한국의 현대사는 격변과 파란의 역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잿더미도 수습했고, 군사독재도 마침내 이겨냈고, 절차적 민주주의도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막을 연 정치의 전쟁화 현상에는 마침표가 찍힐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를 않습니다. 가난도 극복하고, 독재도 물리친 자랑스럽고 위대한 대한민국이 정치의 전쟁화 앞에만 서면 어째서 전혀 맥을 추지 못하고 있을까요?
노무현 탄핵과 박근혜 탄핵은 정당성이 부족한 정치 탄핵
장 :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막이 오른 정치의 전쟁화는 그치기는커녕 되레 점점 더 극심해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탄핵의 정치’가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블랙홀처럼 완전히 집어삼켰습니다. 정치적 경쟁자를 투표장에서 선거로 이기려 하지 않고, 법정에서 선고로 제거하려는 근래의 행태는 정치의 전쟁화의 연장선 위에 가로놓여 있습니다. 저는 윤석열 탄핵을 제외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지나치게 정치적인 탄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무현 탄핵과 박근혜 탄핵은 정당성이 부족했던 탄핵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공 : 박근혜 탄핵도 정당성이 부족한 탄핵이었다는 교수님 말씀은 선수 보호 차원에서 제가 글로 정리하면서 솔직히 검열하고 싶습니다.
장 : 물론 정당성은 상대적 가치입니다. 따라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당한 범위의 탄핵인지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지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경우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탄핵당해야 함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노무현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권한이 남용된 사례에 해당합니다. 정치와 권력에 내포된 본질적 속성들 가운데 하나가 독일의 법학자 카를 슈미트가 말한 바대로 “적과 동지를 구분하는 일”에 있기는 합니다. 이는 슈미트가 정치를 전쟁의 잣대를 가지고 파악한 까닭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정치는 전쟁과 달리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 형태를 띠어야 하고, 정치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은 헌법과 법률로써 이미 구현돼 있습니다. 탄핵의 남용과 오용은 그런 제도적 장치들을 무력화하고 맙니다.
민주주의의 근본적 존재 원리는 다수에 의한 지배에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다수의 의지가 최종적 심급, 즉 결정자 역할을 일반적으로 해왔습니다. 영국의 의회주의 혁명도, 미국 독립혁명도, 프랑스 대혁명도 일직선으로 순탄하게 진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전진과 후퇴가 교대로 되풀이되는 반전과 부침의 연속이었습니다. 서구 사회가 민주주의의 진퇴를 겪으며 뼈저리게 체득한 원리가 있습니다. 다수에 의한 결정이 비록 최종 심급 구실을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보전하지 못한다는 교훈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다수에 의한 의지나 지배만으로는 미흡합니다. 제도의 힘이 적절하게 동반돼야 합니다. 법치, 곧 법률에 입각한 통치는 제도의 힘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대표적 경우입니다. 법치의 기본 정신은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동시에 법이 오남용되어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선거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뼈대입니다. 더욱이 대통령 선거 결과는 다수의 의지가 관철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현직 대통령을 임기 중에 대통령직에서 퇴진시키려면 헌법에 규정된 엄격한 조건들을 확실히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법치 역시 유지될 수가 있습니다.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는 탄핵을 반대하는 행동이 법치를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윤석열의 사례와 달리 노무현과 박근혜 탄핵의 경우에는 탄핵 사유로 제시된 내용이 모호하거나 또는 부족했습니다. 대통령 탄핵 절차는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하는 헌법적 사유가 발생했음에도 물러나지 않고 버틸 때 발동돼야 합니다. 노무현 탄핵과 박근혜 탄핵 절차는 헌법적 사유가 아닌 정치적 필요성에서 개시된 측면이 짙습니다.
공 : 정치적 문제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법적인 수단에 과도하게 의지해 문제를 처리했다는 말씀이네요.
장 : 정적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법을 오남용한 셈이죠. 그러한 오남용이 제일 심했던 때가 2004년 4월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이었습니다. 2017년 12월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노 전 대통령의 사례에 견주면 법의 오남용이 덜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탄핵에 필요한 조건이 충분하게 구비됐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습니다. 조건이 불충분한 상태에사 강행된 탄핵은 정치를 나아지게 하기는커녕 되레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기 일쑤였습니다.
공 : 지금은 방귀 뀐 뭐가 먼저 성내는 시대라고, 심지어 장동혁 의원은 국민의힘 당대표 취임 일성으로 이재명 정부를 조기 종식하겠다고 열을 올렸습니다.
장 : 미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은 다수의 지배만으로는 민주주의를 효과적으로 지켜내기 어렵다는 가르침을 혁명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들이 법에 의한 지배를 중시하게 된 역사적 연원입니다.
공 : 서구와 달리 한국은 아래로부터 법치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장 : 우리나라는 엘리트의 지배가 법의 지배로 둔갑해왔습니다. 법의 지배와 엘리트의 지배를 혼동하는 탓에 한국에서는 탄핵이 오남용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애꿎은 법의 지배에마저 덩달아 부정적 인상이 덧씌워지고 말았습니다. 법의 지배가 억울하게 도매금으로 비판받을 자양분을 엘리트들이 제공해왔습니다.
홍희경(이하 홍) :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에 대한 탄핵안이 1998년 12월에 하원에서 가결됐었습니다. 반면에 트럼프는 의회 점거 폭동까지 공공연히 사주했는데도 탄핵안이 발의만 되고 가결은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도 탄핵의 잣대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장 : 클린턴 탄핵은 노무현 탄핵처럼 부당하고 억지스러운 탄핵이었습니다.
공 : 1998년의 클린턴의 이른바 부적절한 관계는 사회적 지탄으로, 2004년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은 유권자의 심판으로 마무리돼야 어울릴 일이었습니다.
장 : 클린턴 탄핵도, 노무현 탄핵도 야당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목적의 정략적 탄핵이었습니다.
홍 : 우리나라에서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이 헌법재판관 전원 일치로 선고돼야 한다는 정서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사법부는 대통령 탄핵 판결이 끝나면 이튿날 곧바로 휴가를 가도 될 만큼 이후에 몰아칠 후폭풍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대사건에 대한 뒷수습은 나 몰라라 하는 분들에게 계속 지금처럼 큰일을 맡겨야 하는지 하는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장 :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판결을 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탄핵 심판에 임해서는 여론의 풍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⑦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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