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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무조건 합시다 -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는 없다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4-09-26 21: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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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와의 싸움이 승산과 무관한 당위의 문제였듯이, 남북한의 통일은 현실의 유불리를 초월한 숙명적 과제이다. 이미지는 영화 「안시성」의 한 장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하 ‘임종석’으로 호명)의 9ㆍ19 평양 공동선언 6주년 광주평화회의 기조연설을 오늘에야 읽었다. 「평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연설에서 임종석은 통일을 하지 말자는 도발적 제안을 했다. 행사가 진행된 장소는 광주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김대중 평화센터’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과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일생의 사명이자 목표로 여기며 평생을 헌신했다. 그 공로를 국제사회에서 폭넓게 인정받아 그는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했다.


임종석이 김 전 대통령의 이름이 들어간 상징적 공간에서 통일을 단념하자고 외친 행동은 비유하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에 건립된 ‘박정희 체육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경제를 포기하자고 동을 뜬 사건에 너끈히 비견될 수가 있다. 이는 임종석의 돌발적 제안이 그만큼 황당하고 괴이하며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임종석의 제안에는 나름 일리 있는 구석이 여럿이었다. 문제는 메시지가 아닌 메신저에 있었다.


그 이유와 명분과 논리가 아무리 그럴싸하다 한들 북한을 대한민국 영토로 명기한 현행 헌법 3조를 삭제 또는 개정하고, 통일부를 정부조직에서 폐지하며, 통일 논의를 향후 30년 동안 봉인하자는 주장은 조갑제 전 월간조선 사장 유형의 강경 극우 보수 성향의 인사나 아니면 김태효 현 국가안보실 1차장 부류의 친일매국 뉴라이트 망동 분자들 입에서 발설되어야만 어울릴 이야기였다. 20대 초반 시절의 앳되고 평범한 여대생 임수경 양을 북한 땅에 밀입북시켜 박복한 팔자의 여인네로 만들고, 그 후에도 무수한 전대협 후배들을 신성한 조국 통일의 제단에 차례차례 바침으로써 그들의 인생을 수십 년간 꼬이게 한 왕년의 ‘의장님’ 혹은 ‘종석이 형’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올 소리는 도저히 아니었다.


임종석이 어떠한 개인적 의도와 동기를 심중에 품고서 사실상의 분단 고착화 책동에 나섰는지는 그와는 말 한번 섞어본 적이 없는 필자가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확실한 사실은 임종석이 평화를 위해 통일을 희생시키자는 제안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위시한 직전 정부의 고관대작들이 대거 참석한 자리에서 역설함으로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두관 전 행정안전부 장관 정도만이 언급되어온 민주당 계열 정당의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 자신의 이름을 상장시키는 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는 점이다.


임종석은 2019년 11월에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면서 정계 은퇴를 선언한 터였다. 통일운동에만 전념할 필요성을 스스로의 손으로 제거한지라 그가 정계 복귀를 발표한 시점은 어쩌면 이제 초읽기 단계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나는 임종석이 남북한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간의 관계로 규정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코드에 일부러 맞추려고 박근혜의 ‘통일 대박론’의 안티 테제, 즉 반대 명제일 ‘통일 포기론’을 느닷없이 거론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남한과 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인식하고 있기로는 남한의 윤석열 대통령이나 북한의 김 위원장이나 임종석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피장파장인 탓이다.


우리가 실제로 눈여겨봐야만 할 부분은 정작 따로 있다. 다름 아닌 임종석 수준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통일 일꾼이 통일을 하지 말자고 목청을 높여야만 비로소 통일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조금이나마 일어나는 현재 남한 사회의 지극히 안타깝고 일그러진 풍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총화하면 통일을 하지 말자는 임종석의 절규 어린 몸부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이나,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무차별 공격과 같이 저 멀리 남의 나라 일처럼 치부되는 중인 한반도 분단체제의 모순과 병폐를 일반 대중에게 통렬하게 일깨워주는 역설적 계기로 요 며칠 강력히 작용했다.


21세기가 개막된 지 사반세기 가량이 흐른 지금, 민족적 정체성에 근거한 개별 국민국가의 전성시대로 다시금 회귀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뚜렷이 감지ㆍ포착되고 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습니다”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취임사가 뒤늦게 빛을 발하고 있는 셈이다.


출산율 저하의 여파로 말미암아 배달겨레가 아예 멸종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면 사라졌지, 한족이나 게르만족이나 마사이족으로 통째로 바뀔 리는 만무하다. Korean은 휴전선 남쪽에 살든 북쪽에 살든, 아니면 바다 건너 이역만리에 거주하든 종국에는 Korean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겠다.


조인성이 주연한 한국 영화 「안시성」은 작품의 완성도와 관련된 시끄러운 논란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명대사를 남겼다. 패배주의에 찌들어 당 태종 이세민에게 항복할 것을 집요하게 종용하는 자들에게 양만춘 장군이 했던 “넌 이길 수 있을 때만 싸우냐?”는 당찬 일갈이 바로 그것이다.


외세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강제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재통합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책으로 쓴다면 아마 웬만한 규모의 대학도서관 한 개쯤은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테다. 그럼에도 나는 피곤하고 돈 나가는 통일 같은 건 하지 말고 대결과 대화 사이를 적당히 오가며 북한과 지금 이대로 맘 편히 나뉘어 살자는 사람들에게 전설상의 인물로만 그 실체가 꾸준히 평가절하당해온 용맹하고 위대했던 어느 고구려 영웅의 명언을 살짝 각색해 들려주련다.


“너희는 북한이 예뻐 보일 때만 통일하냐?”


가장 잘난 조상은 후손에게 풍성한 유산을 물려주는 조상이다. 가장 못난 조상은 후대에게 유산은커녕 과제조차 물려주지를 못하는 조상이다. 통일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최우선적 과제이다. 그 과제를 당장 힘들다는 핑계로 쓰레기통에 내버리겠다니? 우리가 가장 잘난 조상은 되지 못할지언정 가장 못난 조상이 되어야 쓰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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