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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한남동의 ‘노인의 바다’ - 대통령 윤석열의 비루함을 재확인한 겨울날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5-01-03 19: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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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연초의 한남동의 태극기 부대 집회 현장은 1970년대의 공화당이나, 1980년대의 민정당 전당대회를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필자가 2025년 1월 3일 낮, 한남대교 육교 위에서 촬영한 사진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하루 중 지하철 이용객이 가장 적은 시간대였다.

 

나는 12·3 내란 사태의 우두머리 윤석열이 일본 적군파가 최후의 단말마적 발악으로 자행했던 저 악명 높은 아사마 산장 사건을 연상시키는 추태 가득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남동의 이른바 대통령 관저로 향하는 길이었다.

 

아사마 산장 사건은 진즉에 망조에 접어든 일본 사회의 극좌파가 작게는 산장 관리인의 아내를, 크게는 일본 국민 전체를 인질로 잡고서 펼친 유혈 농성 투쟁이었다. 시대착오적 친위 군사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자멸한 윤석열은 좁게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중인 수백 명의 남의 집 귀한 아들들을, 넓게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볼모로 삼고서 일국의 통치자였다고는 믿어지기 어려울 정도의 비겁하고 졸렬한 농성전을 벌써 몇 주째 전개해온 터이다.

 

귀한 남의 집 아들들 신세 망치기로 작정한 비루한 졸부가 머무는 곳을 ‘관저’라 호칭하는 건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리라. 필자가 윤석열이 작금에 은신해 있는 공간을 ‘산장’이라 불러야 옳다고 판단한 까닭이다.

 

그런 윤석열에게도 지원군은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머릿속의 시계가 멈춰버린 적잖은 숫자의 노인들이었다. 윤석열을 지킨다며 한남동으로 몰려들어 한 손에는 태극기를, 나머지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서 소리 반, 가래 반의 탁한 목소리로 열심히 군가를 노래하는 일은 그들에게 자신이 이 세상에 아직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필사적인 존재증명의 행위와 같았다.

 

한남동 산장은 서울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2호선을 타고서 목적지인 한남동으로 출발한 나는 신당역에서 6호선 열차로 환승했다. 서두에 밝힌 대로 한산한 시간대인지라 여유 있게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때마침 맞은편 좌석에는 손에 태극기를 움켜쥔 노인 한 명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휴대전화 액정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이들 틈에 외롭게 앉아 있었다. 노인이 손에 든 태극기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필자를 제외하면 없는 듯했다.

 

한강진역에서 전동차를 내리는 순간 나는 대한민국이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음을 확연히 실물로 깨달을 수 있었다. 필자 또한 지금은 나이를 남부럽지 않게 먹은 축에 속한다. 그런 나조차 한강진역 안팎에 무리 지어 있는 노인들에 견주면 아직은 소년이고 청년이었다.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인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마음속에서 다시금 하게 된 순간이었다.

 

한남동 산장 주변의 인도는 “탄핵 반대!”를 외치는 인파로 빽빽이 메워져 있었다. 당연히 대부분이 노인들이었다. 진한 경상도 사투리가 도처에서 울려 퍼졌음은 물론이다. 박근혜와 윤석열이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전통적인 보수 지지층의 결집을 의도하며 찾아간 대구 서문시장을 서울 한복판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도보로 한남동 산장을 가려면 한남대로 위를 가로지르는 낡은 육교를 필히 건너야만 한다. 육교 아래편에서는 경찰관 몇 명과 구청직원 하나가 행인들을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다. 일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육교 위에 올라가면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육교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대다수의 집회 참가자들은 안전을 염려해 통제에 잘 따랐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들이 당장 육교 저쪽으로 건너가지를 못하면 윤석열이 공수처 수사관들에게 곧 체포돼 의왕 구치소로 압송될 것처럼 한사코 빨리 도로 건너편으로 가야겠다고 고함을 소리소리 질러댔다. 육교를 빨리 건너가려다 요단강을 빨리 건너갈 수도 있다는 걱정쯤은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가히 노인의 바다가 되다시피 할 만큼 인파가 운집한 시위 현장엔 으레 장이 서기 마련이다. 어묵이나 떡볶이를 파는 좌판들이 여럿 등장하는 법이다.

 

그러나 한남동의 태극기 부대 집회에는 노점상들이 좀체 보이지 않았다. 노인들에게 별다른 구매력이 없다는 냉혹한 자본주의적 시장질서가 여지없이 관철되고 있는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따끈한 국물 한 컵 사 먹을 데가 마땅치 않은 자본주의적 시장질서를 수호하겠다고 수많은 노인들이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의 은신처인 한남동 산장으로 몰려왔다. 지독한 역설이었다. 근본을 따지자면 전형적인 좌파적 인기영합주의(Populism) 정책인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마저 만약에 없었다면 저들이 한남동으로 과연 현재같이 대규모로 모여들 수 있었을까?

 

윤석열은 어쩔지 몰라도 김건희는 영원한 젊음을 꿈꾸며 살아왔다. 김건희를 둘러싸고 수시로 빚어지는 과도한 성형 의혹의 원인도 늙기 싫어하는 김건희의 개인적 욕망에서 결국은 비롯됐다. 그토록 노화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김건희는 그와 남편을 지켜주겠다며 모인 사람들의 주류가 나이든 노인들이라는 데 대해 솔직히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까? 내 처지가 왜 이렇게 되었냐고 비관하며 남편을 붙잡고 끝없이 신세 한탄을 늘어놓고 있지 않을까?

 

나는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노인들을 한 번 더 유심히 살펴봤다. 겨울철 추위로 다들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이 먹으면 뜨끈한 아랫목이 간절히 그립다고 했다. 그들은 뜨끈한 온돌 대신에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 위에 앉아 있었다. 건강에 분명 좋지 않을 텐데 하는 지극히 현실적 걱정이 그들과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에게까지 들 지경이었다.

 

타인을 인간방패로 앞세워 권세와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모든 권력자들은 추악하다. 팔팔한 이팔청춘과 일찌감치 작별한 약골 체질의 노인세대를 인간방패로 앞세워 본인의 권세와 기득권을 연정하려는 권력자는 특히나 더더욱 추악하다.

 

나는 한남동을 벗어날 때는 이태원역까지 걸어와 지하철을 탔다. 이태원은 2022년 가을에 슬프고 안타까운 압사 사고가 일어난 장소였다.

 

윤석열은 기를 쓰고 삼각지로 대통령 집무실을 옮겼다. 그로부터 얼마 후 삼각지 동쪽의 이태원에서 핼러윈 참사가 일어났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윤석열은 이태원 동쪽의 한남동에서 그의 삶에서 어쩌면 마지막 사식(私食)이 될지도 모를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다. 눈치도, 염치도 실종된 윤석열에게 나는 대한민국 제22대 대통령에 대한 마지막 알량한 인간적 예의를 쥐어짜 진심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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