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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신익희의 길이냐, 이민우의 길이냐 - 개헌 논의는 어떻게 트로이의 목마가 되었는가

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 기사등록 2025-04-07 16: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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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과 그 추종 세력이 여전히 활개 치는 상황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조기대선 개헌투표 동시 실시 제안은 제안 당사자를 몰락시킨 이민우 구상과 같은 파괴적 역효과를 자칫 부를지 모른다. (사진 출처 : 이민우 전 신민당 총재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누리집, 우원식 국회의장 – 대한민국 국회 누리집)

특정인을 겨냥한 불온하고 편집증적인 악마화 작업은 보통 어떤 때 시작되느냐? 어떤 사람의 행동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행동을 부른 의도에 해석과 판단의 초점을 맞출 때 부당한 악마화가 싹트기 마련이다.


문제는 사람의 마음은 본인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점이다. ‘내 마음 나도 모르는’ 존재가 다름 아닌 인간인 셈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관한 탐구를 근원적 과제로 설정한 학문인 철학이 바로 이와 같은 배경으로부터 탄생했다고 하겠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기자 회견을 자청해 조기 대선과 헌법 개정에 관련된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전격적으로 제시했다. 우 의장의 제안을 둘러싸고 다양한 분석과 해설이 즉각적으로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우원식 의장이 어떠한 의도 아래 대통령 선거와 개헌 관련 국민투표를 나란히 실행하자는 구상을 밝혔는지에 관한 논란과 설왕설래가 대다수였다.


우원식 의장이 오로지 나라를 사랑하는 순수한 충정으로 조기 대선과 개헌을 동시에 추진하자고 공개적으로 제언했는지, 아니면 “물 들올 때 노 젓는다”고 윤석열 일파가 일으킨 내란 사태를 진압·수습하는 과정에서 한껏 높아진 우 의장의 위상과 지명도를 십분 활용해 대선전에 황급히 뛰어들 욕심으로 대통령 선거와 국민투표를 결부시켰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을 터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대목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행동이 윤석열 일당의 내란 음모에 적극 가담·부역한 원죄로 말미암아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기는 고사하고 아예 존폐의 위기에 직면한 국민의힘에게 극적인 활로를 열어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85년에 치러진 2·12 총선에서의 대참패로 인해 옹색한 궁지로 내몰렸던 전두환 정권과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이민우 당시 신민당 총재의 갑작스러운 내각제 개헌안 덕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고 있다. 세간에서 ‘이민우 구상’으로 불린 이 총재의 내각제 제안이 야당과 국민의 대통령 직선제 부활 요구에 돌연 찬물을 끼얹은 탓이었다.


당시에도 이 총재의 뜬금없는 내각제 제안 의도와 관련해 온갖 풍문이 나돌았다. 대부분의 소문은 진위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핵심은 정치권과 사회에 미친 실질적 영향이었다. 이민우가 쏘아 올린 내각제의 공을 조선일보와 KBS 등의 수구 기득권 매체들이 받아 부지런히 확대·증폭시킴으로써 대통령 직선제를 의원내각제로 물타기 하려는 집권세력의 전략은 일정하게 적중·주효할 수 있었다. 모종의 기획과 책략에 의거하여 인위적으로 반전된 정국의 흐름에 한껏 고무돼 기고만장해진 전두환은 종국에는 4·13 호헌조치의 초강수를 내놓는 만용을 부리게 된다.


신군부의 내각제 개헌을 통한 정권연장 기도는 박종철과 이한열 두 소중한 젊은 목숨의 희생과 수많은 학생과 국민이 참여한 1987년의 6월 시민항쟁을 거친 연후에야 어렵사리 저지·분쇄될 수가 있었다. 오랜 야당 정치인 생활로 쌓아 올린 이민우 총재의 권위와 명성은 소위 ‘이민우 파동’의 파괴적이고 불미스러운 후폭풍에 휩쓸리며 모래성처럼 일거에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는 명예회복의 꿈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쓸쓸히 정계를 은퇴해야만 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재판관 만장일치로 인용돼 수치스럽게 권좌에서 쫓겨난 윤석열과 그의 아내 김건희는 한남동의 대통령 관저를 ‘한국판 아사마 산장’으로 삼아 여전히 공공연하게 내란을 선동하고 있다. 아사마 산장은 일본의 연합 적군이 최후의 단말마적 농성을 벌였던 곳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하던가. 남한 극우세력의 총책으로 전락한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행태는 과거 일본 극좌파 무리의 행동거지와 영락없는 판박이다.


바다 건너 일본 열도의 옛 극좌파와는 달리 한반도 남쪽의 윤석열에게는 아직도 적잖은 숫자의 동조세력이 법조계와 언론계, 학계와 종교계를 중심으로 제도권 안팎에 강력하게 포진해 있다. 윤석열의 농성전이 일본 연합 적군의 농성투쟁과 비교해 최소한 몇 배는 더 해롭고 위험한 까닭이다.


넉 달여 만에 가까스로 주불이 진화된 윤석열의 친위 군사쿠데타의 잔불은 언제 다시 활활 타올라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하게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은 샴페인을 터뜨려도 너무 일찍 터뜨린 제안이었다.


윤석열의 내란이 완벽하게 진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섣부르고 성급한 개헌 논의는 트로이의 목마와 같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일리아드」에서 묘사된 트로이인들은 그리스군이 전부 철수한 것으로 착각해 목마를 신이 선물한 전리품이라면서 성안으로 어리석게 끌어들였다가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석열의 내란 진압을 집요하게 방해했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권영세 같은 부류의 불순하고 기회주의적인 친위쿠데타 동참자들이 개헌이라는 이름의 트로이의 목마에 어느새 이미 잽싸게 올라탄 상태이다. 우원식 의장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의 개헌투표 제안은 내란 세력에게 천금과도 같은 기사회생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신익희 전 국회의장의 안타까운 급서 이후 국민이 진정으로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입법부 수장을 맞이하지 못해왔다. 신익희 의장은 이승만의 일인 장기독재에 맞서서 선명한 야당 정치인으로 변신해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쓰러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주권주의의 확립에 최선을 다했다.


신익희 의장의 길을 가야 마땅할 우원식 의장은 지금 제2의 이민우가 될 수도 있을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하려 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께서는 쿠데타군의 국회 침탈을 이겨내고 비상계엄의 해제를 용감하고 슬기롭게 이뤄내던 그날의 초심을 내란의 완전 종식과 민주개혁진영으로의 불가역적 정권교체가 완성되는 시점까지 꿋꿋하고 의연하게 지켜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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