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박정희가 윤석열의 덜미를 잡은 까닭은
김일성과 윤석열 두 사람은 남북한 전역을 통틀어 무력통일의 야욕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거나 또는 옮기려 했던 단 두 명의 최고 권력자로 역사책에 기록될 전망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윤석열 일당의 친위 군사쿠데타 음모를 어떻게 사전에 예견·탐지할 수 있었을까? 김민석은 군부와는 인연이 없어도 보통 없는 사람이 아닌데…. 순간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김민석 총리가 졸업한 숭실고등학교와 윤석열이 나온 충암고등학교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었다.
12·3 내란 사태를 주도한 집단은 세칭 충암파였다. 전직 대통령 윤석열, 전직 국방부 장관 김용현, 전직 방첩 사령관 여인형 전부 충암고등학교 선후배 관계로 엮여 있었다. 이들 3인 모두 고교 평준화 세대이다. 평준화가 무어냐? 거주지를 기준으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체제이다.
그러므로 충암고와 숭실고는 근본적으로 골목 친구 또는 동네 선후배 관계로 묶여 있기 마련이다. 더욱이 성적이 우수한 이른바 상위권 학생들끼리는 학교가 달라도 교류가 잦은 법이다. 이를테면 충암고 전교 꼴찌와 숭실고 전체 꼴등은 어울릴 일이 없지만(설령 어울려봤자 뭐는 뭐끼리 모인다고 주변으로부터 손가락질만 당하기 십상이다), 숭실고에서 1등 하는 학생과 충암고 수석인 모범생은 이런저런 일들로 서로 얼굴을 볼 기회가 많다. 이들 상위권 학생들 사이의 접촉은 성인이 되어도 꾸준히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그 결과 충암고 동창생들이 모여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를 숭실고 동문들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된다. 술만 들어갔다 하면 비몽사몽 간에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마구 떠들어대는 윤석열이 충암파에게 한 얘기가 숭실파(?) 귀에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소싯적에 공부 잘한 윗동네 숭실파가 역시나 어렸을 때 공부 잘했던 아랫동네 충암파의 뒷덜미를 확 잡아챈 셈이니 대한민국 군사쿠데타의 원조인 박정희 정권이 전격적으로 실시한 고교 평준화 제도가 윤석열 정권의 친위 군사쿠데타를 진압하는 데 톡톡히 일조했는지도 모를 노릇이라 하겠다.
윤석열, 한반도 통일전쟁을 꿈궜나
올해는 광복 80주년이자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된 지 만으로 80년째가 되는 해였다. 2025년 광복절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착잡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다.
1950년의 6·25 전쟁은 소련과 중국의 군사적 지원을 등에 업고 자신만만해진 김일성이 전면 남침을 감행으로써 시작되었다. 1980년대를 풍미했던 수정주의적 북침설 시각은 소련이 붕괴하고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 꽁꽁 감춰져 있던 냉전 시대의 기밀문서들이 차례로 공개되면서 그 논거와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한반도 분단 80년사에서 무력통일의 구상을 실제로 행동에 옮긴 인간은 김일성이 유일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북진 통일을 요란하게 외치기는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의 아이젠하워 행정부를 압박하려는 목적의 벼랑 끝 전술일 뿐이었다. 한미동맹의 근간으로 굳건히 자리해온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이승만의 대미 협박극의 성공이 낳은 산물이고 결실이었다.
이승만부터 문재인까지 남한의 모든 대통령은, 김일성 사후의 김정일과 김정은 북한의 두 세습 독재자는 무력으로 남북을 통일하겠다는 의사를 진지하게 품지 않았다. 북한은 테러와 국지적 도발로, 남한은 다양한 형태의 경제제재와 북파 공작원 침투로 각각 상대방을 괴롭혔을 따름이다.
윤석열의 엽기적인 특이점(Singularity)은 바로 여기에서 포착된다. 그는 남북한을 통틀어 김일성 이후 최초로 한반도의 무력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러한 생각을 실질적 행위로 뒷받침하려 들었던 최초의 최고 통치자였다.
윤석열이 단지 비상계엄 유도를 목적으로 북한과의 유혈 충돌을 기획했을까? 이는 소설가 하일지의 표현을 잠시 빌린다면 윤석열에 대한 전폭적 모독이자 터무니없는 과소평가일 수가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윤석열은 어쩌면 진실로 억울할 수도 있다. 그는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등 온갖 중범죄에 연루된 아내 김건희를 보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성한 조국통일전쟁, 곧 북한해방전쟁에 나서고자 작년 초겨울 군대를 동원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1950년의 김일성처럼 되고자 1980년의 전두환처럼 굴었는지도 모른다.
김건희 특검팀이 삼부토건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벌이고 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우리의 애당초 예상을 능가하는 압도적 스케일을 소유한 인사들이었음이 시시각각 밝혀지고 있다. 그들이 간직해온 망상의 크기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멀찍이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가 오로지 삼부토건 주가만 띄우려 전쟁통인 우크라이나로 기어이 향했을까?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이나를 복구하는 일은 장차 펼쳐질 한반도 통일전쟁 다음을 대비한 사전예행연습, 즉 리허설이었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 현장에서 터득한 경험과 기술에 입각해 한반도 재건 사업을 수행하면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는 가히 만수르 못잖은 전 세계적 갑부가 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대다수 민중에게는 죽음과 폐허를 남기지만, 극소수 권력자에겐 천문학적 규모의 부와 재산을 안겨주었다.
김일성은 적화통일을 노리며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다, 윤석열이 미사일 발사 단추를 누르며 그렸을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과 색깔은 무엇이었을까? 머리에서 발끝까지 유달리 검은색을 선호해온 김건희의 미학적 취향을 고려하면 ‘흑화통일’로 명명하는 게 아마도 적합할 듯싶다.
김일성의 적화통일 야욕은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두고두고 가져왔다. 인적 희생의 처참함과 물질적 피해의 막대함에서 김일성의 적화통일 기도의 후과를 훨씬 더 뛰어넘는 인류사적 참회로 귀결됐을 게 분명한 윤석열의 흑화통일 야심을 영웅적으로 분쇄한 시민들과 국군 장병들에게 필자는 진심으로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는 바이다. 평화롭게 유지되는 분단이 무력으로 이룬 통일보다도 최소한 백만 배는 아름하고 고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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