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리건과 벌컨」, 정당이 납치된 시대의 죽비소리
장훈 교수는 훌리건들 반대편에는 벌컨(Vulcan)들이 포진해 있다고 역설한다. 벌컨은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 판단을 중시하는 시민들을 뜻한다. 장훈 교수는 벌컨들이 소란스러운 지금의 정치판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채 깊은 침묵 속에 빠져버렸다고 「훌리건과 벌컨」에서 긴 한숨을 내쉬며 개탄했다. 훌리건의 득세와 벌컨의 퇴조 현상은 상식적 민심과는 나날이 동떨어져가는 이른바 당심에 무기력하게 휘둘려온 최근 20여 년 동안의 한국 정당정치의 족적에서 뚜렷하게 증명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대한제국군 장교 출신 연기우(延基羽, 미상~미상) 의병장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선생은 강화진위대 부교 출신으로 1907년 일제의 대한제국군 강제 해산에 격분해 강화진위대 군인들을 이끌고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군대해산 이후 의병항쟁이 전국으로 확산될 때 선생의 의진을 비롯한 주요 의병부대는 이인영을 중심으로 13도창의대진소를 결성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경기도 양주로 모여든 연합의진은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하여 일본군과 4개월 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선생은 서울진공작전 중 부상을 입고 체포되었으나 일제의 경비가 느슨한 틈을 타 탈출하였다.
1908년 13도창의대진소가 해산되자 선생은 서울, 경기, 황해지역 의진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임진강을 넘나들며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신무기를 구입해 무장을 강화하였고, 엄격한 군율을 바탕으로 군자금과 물자를 사사로이 사용하지 않도록 하였다. 특히,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일이 없어 지역 주민들의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1910년 일제는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해 연기우 의병장을 비롯한 경기, 황해지역 의병을 탄압하였다. 이후 연기우 의병장에 대해 1911년 가평에서 일제 헌병대와 전투 중 순국하였다는 설과 1914년 인제에서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순국했다는 설이 있다.
정부는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연기우 의병장의 공로를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국가보훈처는 지혜와 용맹을 겸비한 연기우 의병장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공훈선양 학술강연회를 8월 중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8월 한 달간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선생의 생애와 의병활동을 담은 기획 사진을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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