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희준 메시지 크리에이터
권리를 구제받는 길은 AI가 아닌 전문가에게 있다
이진화 노무사는 인공지능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용자와의 법률적 분쟁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이 명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지는 인공지능을 황금송아지처럼 숭배하는 최근의 세태를 AI의 하나인 제미나이로 비유적으로 그려낸 모습
공희준(이하 공) : 인공지능(AI)이 법률문서의 작성이나 판례 분석을 인간을 대신해 수행하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노동위원회나 고용노동부에 제기되는 사건의 양상도 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노동분쟁의 처리 과정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노무사님께서는 전망하고 계십니까?
이진화 서하합동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이하 이) : 질문하신 일이 지금 차츰차츰 현실이 돼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근로자들이 노동 사건에서 어떤 서류들을 제출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아직도 비일비재합니다. AI가 그럴 듯한 답변을 일단은 해주는 상황이다 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공 : AI가 번지르르하게 대답을 잘해주기는 합니다. 그럼 그게 올바른 답이라고 믿으며 그대로 가져다 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 거기서부터 심각한 착오가 비롯됩니다. 우리는 AI의 화려한 답변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실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를 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충분한 증거자료의 뒷받침도 없는 상태에서 AI로 출력한 원문 그대로 관청에 제출하는 경우가 은근히 많습니다. 그런 서류들에는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에 관한 하소연은 가득한데, 정작 근로감독관들의 판단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빠져 있기 일쑤입니다.
공 : 그러면 근로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올 위험성이 커지겠네요. 더욱이 AI로 비장의 승부수를 던졌는데도 원하는 방향으로 결말이 지어지지 않으면 억울한 마음만 더 깊어질 게 뻔합니다.
이 : AI가 마지막 의지처인 사람들은 인공지능으로도 안 되면 극단적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분분이 굉장히 우려가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려운 입장에 처했을수록 더욱더 전문가의 지혜와 역량을 빌려야 한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 : 노무사의 도움을 빌리고 싶어도 비용 부담 때문에 무료 AI에게 물어보는 사람도 꽤 있지 않을까요?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서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있는 게 아닙니다. 노동계급 안에서의 빈부 격차 또한 엄청나게 벌어져 있습니다. 이를테면 반도체 특수로 대박이 난 삼성전자 노동자와 최저임금만 받으며 편의점에서 밤샘 근무를 하는 평범한 노동자를 동일한 노동자 계급으로 간주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그러니 노동 분쟁에서도 ‘무전유죄, 유전무죄’ 세태가 기승을 부릴 개연성이 짙습니다.
이 : 권리를 구제받으려면 그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와 비전문가 간에는 지식의 불균형과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합니니다. 그러한 불균형을 시정하고, 비대칭성을 극복하려면 일정 정도의 비용 지출이 필연적입니다. 저는 그걸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라 최소한의 투자로 생각해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배가 고프면 식당을 가서 밥을 사먹습니다. 그때는 당연히 밥값을 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식점에서 밥값을 지불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생각하면서도 지식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는 몹시 아까워합니다. 그러한 풍조가 아직껏 완전히 불식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식 서비스는 단지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지 엄연한 상품의 일종입니다. 상품을 구매하려면 지갑에서 돈이 나가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자면 전문가의 도움은 간절히 필요한데 돈이 정말로 너무나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나는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냉정하게 딱 잘라 얘기하는 노무사나 변호사는 현실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이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르바이트 임금을 떼인 어린 학생들이 사무실로 찾아와서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면 기꺼이 조언을 해줍니다. 물론 오랫동안 상담을 해주지는 않지만, 피해 구제에 필요한 핵심적 내용만은 꼭 알려줍니다. 그런 학생들이 AI에 자신들이 직면한 상황을 물어보면 본질에서 빗나간 답변을 얻을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AI가 없으면 문제 해결이 안 될 것 같은 ‘인공지능 만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 : 지금은 대통령은 물론이고 웬만한 국회의원들 모두 AI를 믿음직하고 충성스러운 참모나 보좌진처럼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이 : 저는 국정을 책임진 인물들까지 인공지능에 의존하는 세태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반인들이 위정자들의 그러한 행동을 함부로 모방해선 안 됩니다. 자신에게 생소한 문제와 관련해 권리를 구제받고 싶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게 올바른 길입니다. 상식 있는 전문가들이라면 극한의 위기에 봉착한 사람들을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외면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난 변호사들과 노무사들과 회계사들은 그들이 가진 전문성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라면 당장의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흔쾌히 사용하겠다는 마음이 강했습니다. 전문가들의 그러한 선의를 권리로 생각해 악용하려는 사람들이 나와선 당연히 안 되겠지만요.
공 : 노무사님께서 걱정하신 것처럼 한국 사회에는 타의이 베풀어준 호의를 자기의 천부적 권리인 양 당연시하는 양심불량의 인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얌체 같은 무임승차자들을 걸러내는 게 정치와 행정의 중요한 역할일 테고요.
이 : 인건비를 제대로 받지 못한 힘없는 알바생들을 위해 저는 긴 시간은 아닐지언정 저의 시간을 내주고 있습니다. 그런 알바생들에게 사실상 무료상담을 해준 적이 많아요. 저는 청소년들이나 아직 사회 경험이 적은 젊은이들이 인공지능에 기대기보다는 선의를 가진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제미나이도, 챗GPT도 변호사법 위반하고 있어
공 : AI가 근로자에게 잘못된 법률 정보를 제공하여 권리 구제의 기회를 상실하게 했다면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요? 그리고 노무사님께서는 AI를 통한 법률 상담에 일정한 법률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이 :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에는 이용자 본인이 책임을 지는 게 원칙적으로 타당합니다.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공 : 인공지능 업체가 사용자에게 이용료를 받고 제공하는 유료 서비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요?
이 : 법의 잣대를 엄격히 적용한다면 AI 업체 경영자들은 변호사법이나 노무사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야 맞습니다. 왜냐면 자격증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받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해왔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는 AI 업체에 그와 같은 정당한 추궁을 하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인공지능에 의존했다가 낭패를 당한 이용자 스스로가 그 후과를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 :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AI의 안내에 따랐다가 일이 틀어져도 인공지능을 이용한 사람 본인의 과실이라는 뜻이네요.
이 : AI를 이용하기로 선택한 사람도, AI에 질문을 던진 사람도, AI가 답변해준 내용대로 관공서에 서류를 제출한 사람도 자기 자신이니 어떻게 남 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 :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는 인공지능 업체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 : 제미나이든, 챗GPT이든 간에 AI가 법과 관련된 상담을 해주는 것 자체부터 현행법 위반입니다. 무자격자와 중요한 법률 상담을 한 것부터가 애당초 이용자의 과실이 됩니다.
공 :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처럼 의학적·법률적 판단이 결합된 문제가 발생합니다. AI가 이러한 복합적 판단을 수행하는 과정에는 어떤 위험이나 한계가 있다고 보십니까? 인공지능이 아무리 방대한 빅데이터를 축적한다고 하여도 일례로 환자가 AI가 해준 처방을 잘못 믿었다가 한 방에 훅 갈수도 있거든요.
이 : 산업재해 사건에서는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작업의 난도가 일정하지가 않습니다. 금방 판단이 서는 일도 있고, 장시간의 숙고와 논의를 요구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현장관리의 부실로 말미앚아 빚어진 공사장에서의 추락사건 같은 사례에서는 잘잘못을 따지기가 비교적 수월합니다.
하지만 근로자가 어떤 이유로 병에 걸렸는지에 관한 것 같은 일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신해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사람만이 AI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자세하고 면밀하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재해에서는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관찰해야 명확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사건들이 꽤 됩니다. 그런데 AI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제각기 유리한 얘기만 해줍니다. AI가 말해준 결과를 각자 들고 와서 다들 자신들이 옳다고 우기는 탓입니다.
공 : 그러면 산업재해 사건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처럼 돼버리겠네요.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주장하는 내용에 따라서 진실이 엇갈리거든요. 진실이 오리무중에 빠지면 진짜 피해자만 더 억울해질 것 같습니다.
이 : 인공지능은 “모두가 옳다” 또는 “모두 조금씩 양보하자”는 하나마나한 결론을 자주 냅니다.
공 : 그러면 제대로 된 피해 구제가 어려워질 게 분명합니다. 산업재해가 갑자기 미국 드라마 X 파일 같은 미스타리 추리극으로 장르가 변경될 테니까요.
이 : 인공지능은 주체가 다르면 진실도 덩달아 달라지는 치명적 부작용을 초래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묘연해진 진실을 따라서 권리구제도 아득해집니다.
공 : 법률 제공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서식 작성 같은 일이 주요한 수입원이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이 출현하면서 대서소 같은 곳의 필요성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작가들도 죽을 맛이고요. 심지어 국회에서도 의원 명의로 나가는 웬만한 인사말은 AI에 놓고 그냥 돌립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가 회사로 대입하면 사원과 대리는 필요 없고, 과장과 부장만 있으면 그럭저럭 굴러가는 조직이 돼가고 있습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 가운데 한 분이 현직 변리사인데, AI 시대에 굴하지 말고 용기를 내자는 각오의 글을 올리더라고요. 이는 AI가 전문적 지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들의 존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노무사님께서도 인공지능 때문에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계시지 않나요?
이 : 큰 흐름으로 봤을 때는 방금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은 부인하지 못합니다.
공 : 몇몇 대형 회계법인이 신입 회계사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가 이미 오래전에 보도가 됐습니다.
이 : 노동 분야의 현황도 비슷합니다. 현업에 종사한 지 5년 차가 된, 10년 차에 도달한 노무사들은 AI를 활용해 능수능란하게 서류를 꾸밉니다. 신입 노무사들에게 맡겼을 초보적 업무들을 중견 노무사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직접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적잖은 중견 노무사들이 간단한 업무를 도와줄 직업 한 명만 데리고 있는 사실상의 1인 노무사 사무실 운영에 나서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런 소규모 사무실들은 결국은 거의 전부 폐업 위기에 내몰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 : 당장 편한 길이 길게 보면 망하는 길일 수가 있겠네요.
이 : AI 시대에도 ‘규모의 경제’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대형 노무법인들은 AI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인적 자원도 풍부합니다. AI는 본질적으로 도구입니다. 도구를 얼마나 잘 사용하느냐는 이용자인 인간이 얼마나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으며, 얼마나 빼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느냐에 좌우되는 법입니다.
공 : 우수한 인재가 있는 곳에서 AI도 효율적으로 사용될 거라는 말씀이네요.
이 : 예, 그렇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경험과 정보가 부족하면 AI는 이용자에게 사실상 백지만 보여주고 맙니다. 인간이 인공지능에게 뇌를 의탁하면 허접한 결과물만 나오는 까닭입니다.
공 : 저도 비록 무료 버전이기는 해도 종종 AI를 사용하는데 제가 성의 있게 질문하면 성의 있는 답변이, 무성의하게 엉터리로 질문하면 헛소리와 진배없는 답변이 인공지능으로부터 산출됩디다.
이 : AI는 헛소리도 잘하지만, 아부도 잘합니다.
공 : AI가 해주는 속삭임만 듣고 있으면 세상이 완전 장밋빛 일색입니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어요.
이 : 왜냐면 인공지능에게는 인간과는 달리 걱정이란 게 없기 때문입니다. AI의 뿌리는 사람의 머리에 있습니다. AI는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쌓여 있는 공간입니다. 그러니 더 많은 아이디어를 쌓아놓은 조직이 AI도 더 능숙하고 쓸모 있게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공 : 좋은 인공지능을 찾는 일보다 좋은 인재를 찾는 일이 100배는 더 중요한 이유겠네요. (④회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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